2022년 4월 4일 월요일

[중국] 진(秦) 이세황제(二世皇帝, BC 210~207)

() 이세황제(二世皇帝, BC 210~207)

 

  • 출생 : 기원전 230, 이름은 호해(胡亥)
  • 즉위 : 기원전 210, 이세황제로 칭함
  • 사망 : 기원전 207, 자살
  • : 진의 시황제
  • : ?

 

#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황제


20세에 황제에 오른 이세황제는 방탕했고, 파렴치하고 야심 찬 환관 조고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다. 이세황제는 조고와 함께 이사를 포함한 반대자들을 신속히 숙청했다.

 

이세황제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만 빠져 지내는 동안 조고는 세금을 올리고 처벌을 강화했다. 이미 가혹한 정치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군역 동원 결정에 반대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그 도화선이 된 것이 양쯔강 유역에서 발생한 가난한 농민 진승과 오광의 반란이었다.

 

한대의 학자인 동중서는 이 시기를 이렇게 평했다. “가난한 백성들은 마소의 옷을 입고 개, 돼지의 밥을 먹었다. 그들은 탐관오리에게 시달렸고 관료들은 제멋대로 가혹한 처벌을 했다. 백성들은 () 산과 숲으로 달아나 도적이 되었다.” 이러한 농민의 난에 이어 과거 제후국의 지도자들이 군대를 일으켰다.

 

# 환관 조고의 국정농단과 반란, 이세황제의 죽음


이세황제는 나쁜 소식에는 귀를 막고 불길한 꿈을 꾸는 등 정신적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고는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고 대신들도 자신의 말에 동조하게 했다. 황제는 자신이 환각에 빠진 것이아닌지 두려워했다. 이와 같은 수모를 당하던 황제가 기원전 207년에 조고를 꾸짖으려 하자 조고는 사병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하고 황제에게 자살을 강요했다. 그런 다음 황제의 조카인 자영(子嬰)을 진왕으로 옹립했다. 그러나 이 무렵에 제국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장차 한 왕조의 시조가 될 유방이 거느린 반란군이 센양의 동쪽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 진나라 멸망


진왕은 재위 46일만에 상복을 입고 유방에게 가서 항복했다. 유방은 자영을 살려 주었으나 한 달 후, 또 다른 반란군 장수인 항우가 자영과 진의 황족을 모조리 처형하고 도시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자행했다. 도시는 3개워러 동안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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