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 AD 417~458) 28년 : 기원후 444년
▶ 눌지마립간이 왜병을 쫓다가 위기에 빠지다 : 444년 04월(음)
- 二十八年, 夏四月, 倭兵圍金城十日, 糧盡乃歸. 王欲出兵追之, 左右曰, “兵家之說曰, ‘窮宼勿追.’王其舎之.” 不聽, 率數千餘騎, 追及[정덕본·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及으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에는 至로 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는 及을 따랐다.]於獨山之東, 合戰爲賊所敗, 將士死者過半. 王蒼黄弃馬上山, 賊圍之數重, 忽昏霧不辨咫尺. 賊謂, “有隂助.” 收兵退歸.
- 28년(444) 여름 4월에 왜병(倭兵)이 금성(金城)[1]을 10일 동안 포위하였는데 군량이 다 떨어지자 돌아갔다. 왕이 군사를 내어 그들은 추격하려고 하니 좌우에서 말하기를, “병가(兵家)의 말에 ‘궁지에 몰린 도적은 쫓지 말라.’[2]고 하였으니 왕께서는 그 일을 그만두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독산(獨山)[3] 동쪽까지 추격해 맞붙어 싸우다가 적에게 패하여 장수와 사졸 가운데 죽은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 왕이 허둥지둥 말을 버리고 산에 올라가자 적이 몇 겹으로 에워쌌는데, 홀연히 짙은 안개가 끼어 지척에 있는 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적들이 이르기를, “귀신[陰]이 도와주는구나!”라고 말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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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금성(金城) : 신라의 경성(京城) 혹은 초기의 궁성(宮城).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혁거세거서간 21년(B.C.37)조 기사의 주석 참조.
- 궁지에 몰린 도적은 쫓지 말라 : 『손자(孫子)』 군쟁(軍爭)편의 “歸師勿遏 圍師必闕 窮寇勿追”라는 구절 가운데 ‘窮寇勿追’를 인용한 것이다.
- 독산(獨山) : 본서 권3 신라본기3 나물이사금 38년(393) 정월조의 주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