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아달라이사금(阿逹羅尼師今, AD 154~184) 5년 : 기원후 158년
▶ 죽령을 개척하고 왜의 사신이 오다 : 158년 03월(음)
- 五年, 春三月, 開竹嶺. 倭人来聘.
- 5년(158) 봄 3월에 죽령(竹嶺)[1]을 개척하였다. 왜(倭)[2]의 사신이 예물을 가지고 방문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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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죽령(竹嶺)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위치한 높이 689m의 고개로, 죽령재 혹은 대재라고도 한다. 죽령은 신라가 고구려·백제와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교통로상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죽령은 직접적으로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곳이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한반도 중부지역과 신라 왕경 경주를 잇는 교통로를 설정할 수 있다. 이를 죽령로(竹嶺路)라고 할 수 있는데, 충청북도 충주시-단양군-경상북도 영주시-예천군-안동시-청송군-의성군-군위군-영천시-경주로 이어지는 길이다.〈참고문헌〉徐榮一, 1999, 『新羅 陸上 交通路 硏究』, 학연문화사崔永俊, 2004, 『한국의 옛길 嶺南大路』,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
- 왜(倭) : 신라를 침략하거나 혹은 신라와 교류하는 왜 세력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권1 신라본기1 혁거세거서간 8년(B.C.50)조 기사의 주석 참조.
- 왜(倭)의 사신이 … 방문하였다 : 사신을 파견해 예물을 보내 교류를 하려고 했던 왜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 이후 아달라이사금 20년(173)에 왜 여왕 히미코[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오는데, 이때의 사신도 히미코 쪽일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 왜가 지역 단위로 분리되어 있던 상태임을 고려하면, 다른 지역의 세력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