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아달라이사금(阿逹羅尼師今, AD 154~184) 3년 : 기원후 156년
▶ 계립령로를 개척하다 : 156년 04월(음)
- 三年, 夏四月, 隕霜. 開雞立嶺路.
- 3년(156)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렸다. 계립령로(鷄立嶺路)[1]를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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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계립령로(鷄立嶺路) : 계립령(鷄立嶺)은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소재한 고개를 이르는데, 계립현(鷄立峴)이라고도 한다. 마목현(麻木峴), 마골참(麻骨站), 지릅·지름·기름재, 유티[油峙], 경티[經峙]라고도 불리고 있다. 6세기 후반 인물인 고구려 온달(溫達)이 신라로부터 되찾아야 할 영토를 말하면서 그 기준으로 이 고개를 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고구려·백제와 신라 사이, 곧 한반도 중부 지역과 경주를 잇는 교통로상의 요지에 해당한다. 신라는 이 길을 통해 나아가 남한강 상류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계립령로는 계립령을 포함하는 교통로를 의미할 텐데, 충주-문경-상주-선산-왜관-대구-영천-경주로 이어지는 교통로상의 한 부분이다. 계립령에서 파생된 고갯길로는 조령로와 이화령를 들 수 있는데, 계립령, 조령, 이화령은 모두 조령천의 상류인 문경분지로 수렴된다.〈참고문헌〉徐榮一, 1999, 『新羅 陸上 交通路 硏究』, 학연문화사崔永俊, 2004, 『한국의 옛길 嶺南大路』,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