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대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 AD 112~134) 11년 : 기원후 122년
▶ 왜의 침략 소문에 혼란이 일어나다 : 122년 04월(음)
- 十一年, 夏四月, 大風東來, 折木飛瓦. 至夕而止. 都人訛言, “倭兵大來.” 爭遁山谷. 王命伊湌翌宗等, 諭止之.
- 11년(122) 여름 4월에 세찬 바람이 동쪽으로부터 불어와 나무를 부러뜨리고 기와를 날아가게 하였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쳤다. 경도(京都)의 사람들이 소문을 잘못 퍼뜨리기를, “왜병(倭兵)이 대규모로 온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다투어 산골짜기로 숨었다. 왕이 이찬(伊飡)[1] 익종(翌宗)[2] 등에게 명하여 사람들을 타일러서 그치게 하였다.
▶ 누리가 생겨 흉년이 들고 도둑이 많아지다 : 122년 07월(음)
- 秋七月, 飛蝗害糓. 年饑, 多盗.
- 〔11년(122)〕 가을 7월에 누리[蝗]가 날아와 곡식을 해쳤다. 흉년이 들어 도둑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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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이찬(伊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2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익종(翌宗)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10년 정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