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대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 AD 112~134) 10년 : 기원후 121년
▶ 관리를 임명하다 : 121년 01월(음)
- 十年, 春正月, 以翌宗爲伊湌, 昕連爲波珍湌, 林權爲河[정덕본에는 河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阿로 되어 있다. 신라 관등명이므로 阿가 옳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도 阿를 따랐다.]湌.
- 10년(121) 봄 정월에 익종(翌宗)[1]을 이찬(伊飡)[2]으로, 흔련(昕連)[3]을 파진찬(波珍飡)[4]으로, 임권(林權)[5]을 아찬(阿飡)[6]으로 삼았다.
▶ 대증산성을 쌓다 : 121년 02월(음)
- 二月, 築大甑山城.
- 〔10년(121)〕 2월에 대증산성(大甑山城)[7]을 축조하였다.
▶ 왜가 침략하다 : 121년 04월(음)
- 夏四月, 倭人侵東邊.
- 〔10년(121)〕 여름 4월에 왜인(倭人)이 동쪽 변경을 침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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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익종(翌宗)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 지마이사금 11년 4월조에도 왜의 침략에 관한 소문으로 민심이 동요하자 그것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온다. 아울러 한자는 다르지만 같은 발음인 익종(翊宗)이 석씨 족단 출신의 왕인 첨해이사금의 재위 9년에 일벌찬(一伐飡)의 관등을 지니고 백제군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 유례이사금 9년 9월조). 이를 근거로 본 기사와 다른 두 기사에 보이는 익종을 동일 인물로 파악하면서 신라 초기에는 박씨 왕통과 석씨 왕통이 동 시기에 병립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宣石悅, 2001, 『新羅國家成立過程硏究』, 혜안).
- 이찬(伊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2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흔련(昕連)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이 기사 외에는 따로 보이지 않는다.
- 파진찬(波珍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4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임권(林權)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이 기사 외에는 따로 보이지 않는다.
- 아찬(阿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6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대증산성(大甑山城) : 지금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 일대에 있었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본서 권34 잡지3 지리1 양주조에 동래군(東萊郡)의 영현 가운데 하나로 ‘동평현(東平縣)’이 나오는데, 본래 이름이 ‘대증현(大甑縣)’이었다고 되어 있다. 지금의 당감4동 동평초등학교 일대에서 고려~조선 시대 성곽의 존재가 확인되어 1990년대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부산광역시립박물관, 1996, 『堂甘洞城址』). 그 주변의 당감동 고분군에서는 삼국시대 신라 토기가 출토되기도 하였다(釜山大學校博物館, 1984, 『釜山 堂甘洞 古墳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