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AD 80~112) 14년 : 기원후 93년
▶ 관리를 임명하다 : 93년 01월(음)
- 十四年, 春正月, 拜允良爲伊湌, 啓其爲波珍湌.
- 14년(93) 봄 정월에 벼슬을 내려 윤량(允良)[1]을 이찬(伊飡)[2]으로 삼고, 계기(啓其)[3]를 파진찬(波珍飡)[4]으로 삼았다.
▶ 고소부리군에 순행하다 : 93년 02월(음)
- 二月, 巡幸古所夫里郡, 親問髙年, 賜糓.
- 〔14년(93)〕 2월에 고소부리군(古所夫里郡)[5]을 순행하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친히 위문하고 곡식을 내려주었다.
▶ 지진이 발생하다 : 93년 10월(음)
- 冬十月, 京都地震.
- 〔14년(93)〕 겨울 10월에 경도(京都)에 지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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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윤량(允良)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파사이사금 5년 2월조에는 파진찬으로 임명된 기사가 보인다.
- 이찬(伊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2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계기(啓其)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이 기사 외에는 따로 보이지 않는다.
- 파진찬(波珍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4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고소부리군(古所夫里郡) :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다. 본서 백제본기와 지리지 등에 지금의 전북 정읍시 고부면의 옛 지명으로 ‘고사부리(古沙夫里)’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본 기사에서의 고소부리를 이 고사부리와 음이 유사하다는 이유에서 정읍시 고부면 일대로 비정하기도 한다(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31쪽). 그렇지만, 파사이사금 당시 고부 지역이 신라 영역에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기록의 착오로 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신라의 판도 내에 존재한 다른 지역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편 ‘소부리(所夫里)’라는 지명은 백제 후기의 수도였던, 지금의 충남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해당하는 사비(泗沘)의 이칭이기도 한데, 본 기사에서의 고소부리와의 연관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부여 지역이 당시 신라에 속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에, 백제본기에 실려야 할 내용이 신라본기에 잘못 수록된 것으로 보거나, 아니면 신라 영역 내의 다른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