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AD 80~112) 8년 : 기원후 87년
▶ 성루를 수리하고 가소성과 마두성을 쌓다 : 87년 07월(음)
- 八年, 秋七月, 下令曰, “朕以不德有此國家, 西鄰百濟, 南接加耶. 徳不能綏, 威不足畏. 冝繕葺城壘, 以待侵軼.” 是月, 築加召·馬頭二城.
- 8년(87) 가을 7월에 영을 내려 말하기를, “짐(朕)이 부덕함에도 이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데, 서쪽으로는 백제(百濟)와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가야(加耶)[1]와 접해 있다. 덕은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없고, 위엄은 이웃 나라를 두렵게 하기에 부족하다. 마땅히 성벽과 보루를 잘 수리하여 침략에 대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이 달에 가소성(加召城)[2]과 마두성(馬頭城)[3]의 두 성을 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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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가야(加耶) : 삼국시대에 백제, 신라와 함께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 본 기사에서의 ‘가야’는 본서 신라본기 초기 기사의 전후 맥락을 통해 볼 때 김해의 가락국(금관국)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탈해이사금 21년(77) 8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
- 가소성(加召城) : 구체적인 위치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경남 거창군의 동쪽 지역인 가조면 일대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본서 권34 잡지3 지리1 강주 거창군조에 거창군의 영현 가운데 하나로 나오는 함음현(咸陰縣)의 본래 이름이 ‘가소현(加召縣)’이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거창군 속현조에는 가조현(加祚縣)을 소개하면서, 신라 때에는 가소현이었는데, 소(召)와 조(祚)의 발음이 비슷하여 ‘祚’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하였다.
한편 가소성이 낙동강 서편의 거창 지역에 위치하였다면 당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지역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 되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고, 가소성과 마두성 모두 남쪽의 가야 세력의 공격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이해하여, 거창군 가조면 일대가 아닌 경주의 남쪽 방면에서 가소성의 위치를 찾으려는 견해도 있다(李永植, 1985, 「加耶諸國의 國家形成 問題」, 『白山學報』 32, 71~72쪽). - 마두성(馬頭城) : 구체적인 위치를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앞서 나온 가소성과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으로 보면서 경남 거창군 마리(馬利)면 지역에 있었던 성으로 보는 견해(李丙燾, 15쪽), 경북 청도군과 경주시, 경산시의 접경에 있는 마곡산(馬谷山) 일대로 비정하는 견해(李永植, 71~72쪽)가 있다.
〈참고문헌〉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李永植, 1985, 「加耶諸國의 國家形成 問題」, 『白山學報』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