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AD 57~80) 7년 : 기원후 63년
▶ 백제왕이 사신을 보내오다 : 63년 10월(음)
- 七年, 冬十月, 百濟王拓地, 至娘子谷城, 遣使請㑹, 王不行.
- 7년(63) 겨울 10월에 백제왕이 영토를 넓혀 낭자곡성(娘子谷城)[1]에 이르러 사신을 보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가지 않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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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낭자곡성(娘子谷城) : 현재의 충북 청주 지역에 있던 성. 본서 권37 잡지 지리4에는 웅천주의 서원경(西原京)의 이칭으로 ‘비성(臂城)’, ‘자곡(子谷)’이 언급되었는데, 양자 모두 ‘낭비성(娘臂城)’, ‘낭자곡성(娘子谷城)’에서 ‘娘’자가 빠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5 청주목 건치연혁조에도 청주목은 본래 백제의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이었다고 기록되었다. 한편, 낭자곡성을 현재의 충주 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金侖禹, 1988; 金榮官, 2008).〈참고문헌〉金侖禹, 1988, 「娘臂城과 娘子谷城考」, 『史學志』 21金榮官, 2008, 「古代 淸州地域의 歷史的 動向」, 『白山學報』 82
- 겨울 10월에 … 가지 않았다 : 본서 권23 백제본기1 다루왕 36년(63)조에 같은 내용의 기사가 피아(彼我)가 바뀌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