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제4대 민중왕(44~48)이 즉위하다 [기원후 44년]
三國史記 권 제14 고구려본기 제2
민중왕이 즉위하다 : 44년 10월(음)
민중왕(閔中王)은 이름이 해색주(解色朱)이고, 대무신왕(大武神王)의 동생이다. 대무신왕이 사망하였으나, 태자가 어려서 〔나라의〕 정사를 맡을 수 없었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추대하여 왕으로 세웠다.
- 민중왕(閔中王) : 고구려의 제4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4년∼48년이다. 이 기사에서는 이름이 해색주(解色朱)라고 하였지만, 『삼국유사』 권1 왕력(王曆)에는 성은 해(解)씨이고 이름은 읍주(邑朱)라고 나온다. 다른 고구려왕들과 달리 분주(分注) 왕명이 없는데, 본문 왕호와 동일하여 별도로 적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본서에 따르면 대무신왕이 죽은 뒤 태자 해우(解憂; 모본왕)가 어려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이는 왕위의 부자계승원리가 확립되지 않아 전왕과의 혈연관계보다 왕자(王者)로서의 자질이 더 중요시되었음을 보여준다. 재위 2년(45)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자 진휼을 실시하였다. 재위 4년(47) 잠지락(蠶支落)의 대가(大加) 대승(戴升)이 만여 명을 거느리고 낙랑(樂浪)에 투항하였는데, 여기에는 후한 광무제(光武帝)의 낙랑에 대한 지배력 강화가 원심력으로 작용하였다. 왕은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재위 5년(48) 만에 죽었는데, 다음 왕인 모본왕을 본서에서는 조카, 『삼국유사』 왕력에는 형으로 각기 다르게 기록한 것으로 보아 왕위쟁탈전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민중왕은 죽은 뒤 그의 유언대로 민중원의 석굴(石窟)에 장사지냈는데, 장지의 지명을 왕의 시호로 삼았다.
- 해색주(解色朱) : 『삼국사절요』에는 해읍주(解邑朱)로 나온다.
- 대무신왕의 동생이다 : 『삼국유사』 권1 왕력(王曆)에는 대무신왕의 아들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