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AD 479~500) 16년 : 기원후 494년
▶ 홍수가 나다 : 494년 04월(음)
- 十六年, 夏四月, 大水.
- 16년(494) 여름 4월에 홍수가 났다.
▶ 고구려군에 포위당한 실죽을 백제군이 구하다 : 494년 07월(음)
- 秋七月, 將軍實竹等, 與髙句麗戰薩水之原, 不克, 退保犬牙城, 髙句麗兵圍之. 百濟王牟大遣兵三千, 救解圍.
- 〔16년(494)〕 가을 7월에 장군(將軍) 실죽(實竹)[1] 등이 고구려와 살수(薩水)[2]의 들판에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견아성(犬牙城)[3]을 지켰는데, 고구려 군사가 그곳을 포위하였다. 백제왕 모대(牟大)[4]가 군사 3,000명을 보내 구원하여 포위를 풀어주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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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실죽(實竹) : 신라 소지마립간대(479~500)의 장군. 소지왕 8년(486) 장군에 기용된 후 고구려와의 전투를 주도하였다. 소지왕 16년(494)에는 살수(薩水)에서 고구려군에 고전했지만, 같은 왕 18년(496)에 벌어진 우산성(牛山城) 전투에서는 이하(泥河)에서 맞선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 살수(薩水) : 현재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혹은 청천면을 흐르는 달천. 본서 권34 지리1 상주(尙州) 삼년군(三年郡)조에 청천현(淸川縣)은 본래 살매현(薩買縣)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고 고려 때에도 그대로 쓴다고 되어 있다. 매홀(買忽)을 수성(水城)으로 고친 것(본서 권35, 지리2 漢州 水城郡)을 보면 매(買)와 수(水)가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살수가 곧 살매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5, 충청도 청주목(淸州牧) 속현(屬縣)조를 보면 청천현이 고을 동쪽 60리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현재의 괴산군 청천면에 해당한다. 살수를 물 이름, 즉 하천의 명칭으로 이해한다면 청천면을 흐르는 남한강의 지류 달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견아성(犬牙城) : 위치 미상. 살수의 위치가 청천이라면 퇴각로를 감안할 때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의 견훤산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있다(서영일, 83쪽; 이도학, 416쪽; 장창은, 166~167쪽).〈참고문헌〉서영일, 1999, 『신라 육상교통로 연구』, 학연문화사이도학, 2006, 『고구려 광개토왕릉비문 연구』, 서경장창은, 2008,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
- 모대(牟大) : 백제 제24대 동성왕(東城王)으로 재위 기간은 479~501년이다. 본서 권26 백제본기4 동성왕 즉위년(479)조에는 그의 이름이 모대(牟大, 혹은 摩牟)라고 되어 있다.
- 장군(將軍) 실죽(實竹) 등이 … 풀어주었다 : 이와 같은 내용은 본서 권19 고구려본기7 문자명왕 3년(494) 7월조와 권26 백제본기4 동성왕 16년(494) 7월조에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