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AD 479~500) 15년 : 기원후 493년
▶ 백제왕이 혼인을 청하자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내다 : 493년 03월(음)
- 十五年, 春三月, 百濟王牟大遣使請婚. 王以伊伐湌比智女送之.
- 15년(493) 봄 3월에 백제왕 모대(牟大)[1]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다. 왕은 이벌찬(伊伐湌) 비지(比智)의 딸을 보냈다.[2]
▶ 임해진과 장령진을 설치하여 왜적에 대비하다 : 493년 07월(음)
- 秋七月, 置臨海·長領二鎮, 以備倭賊.
- 〔15년(493)〕 가을 7월에 임해진(臨海鎭)[3]과 장령진(長嶺鎭)[4]의 두 개 진을 설치하여 왜적(倭賊)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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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모대(牟大) : 백제 제24대 동성왕(東城王)으로 재위 기간은 479~501년이다. 본서 권26 백제본기4 동성왕 즉위년(479)조에는 그의 이름이 모대(牟大, 혹은 摩牟)라고 되어 있다.
- 백제왕 모대(牟大)가 … 딸을 보냈다 : 본서 권26 백제본기4 동성왕 15년(493)조에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비지의 관등이 이찬(伊湌)으로 되어 있어 차이가 난다.
- 임해진(臨海鎭) : 위치 미상. 현재의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에 비정한 견해가 있지만(李丙燾 譯註, 1983, 『三國史記 上(新裝版)』, 乙酉文化社, 78쪽),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본서 권34 지리1 양주(良州)조에 임관군(臨關郡)은 본래 모화군(毛火郡)인데 성덕왕(聖德王)이 축성하여 일본의 침입로를 막았다고 되어 있다. 임해진을 경덕왕(景德王) 때 고친 이름인 임관군과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장령진(長嶺鎭) : 위치 미상. 본서 신라본기에 장령(長嶺)이 3차례 더 나오는데(일성이사금 4년(137), 6년(139), 7년(140)), 말갈(靺鞨)의 공격을 받고 또 책(柵)을 세워 말갈에 방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사의 장령진(長領鎭)은 왜적에 대비해서 설치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지명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인의 침입과 관련된 지명으로 장봉성(長峯城, 유례이사금 11년(294)), 장봉진(長峯鎭, 소지마립간 22년(500))이 보이는데, 혹시 이 기사의 장령진이 장봉진의 오류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