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AD 479~500) 11년 : 기원후 489년
▶ 놀고먹는 백성들이 다시 농사를 짓게 하다 : 489년 01월(음)
- 十一年, 春正月, 驅游食百姓歸農.
- 11년(489) 봄 정월에 놀고먹는 백성들을 몰아 다시 농사짓게 하였다.
▶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급습하다 : 489년 09월(음)
- 秋九月, 髙句麗襲北邊, 至戈峴.
- 〔11년(489)〕 가을 9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급습하여 과현(戈峴)[1]에 이르렀다.
▶ 고구려가 호산성을 함락하다 : 489년 10월(음)
- 冬十月, 䧟狐山城.
- 〔11년(489)〕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호산성(狐山城)[2]을 함락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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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과현(戈峴) : 위치 미상. 과현을 현재의 북한 강원도 회양군 회양읍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본서 권35 잡지4 지리2 삭주(朔州)조에 연성군(連城郡)은 고구려 각련성군(各連城郡, 혹은 客連城郡)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으며 고려 때의 교주(交州)라고 되어 있다. 교주는 충렬왕 때 회주목(淮州牧)이라 하였다가 충선왕 때 회양부(淮陽府)로 고쳤으며, 현재의 회양군 회양읍에 해당한다.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고구려 우수주(牛首州)조에서는 객련군(客連郡)을 가혜아(加兮牙)라고도 한다고 하였는데, 가혜아를 칼(khal)로 읽고 과(戈)와 통하는 것으로 보았다(酒井改藏, 1970, 「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40쪽). 즉 근거가 뚜렷하다고 할 수 없다.
- 호산성(狐山城) : 위치 미상. 호산성을 앞의 호명성(狐鳴城)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酒井改藏, 1970,「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40쪽), 근거가 불분명하여 받아들이기 어렵다.
- 겨울 10월에 … 함락하였다 : 고구려가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략하고 호산성(狐山城)을 점령한 사실은 본서 권18 고구려본기6 장수왕 77년(488) 9월조에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