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0일 일요일

[고구려] 제2대 유리명왕(BC 19 ~ AD 18) 즉위하다 [기원전 19년]

[고구려] 2대 유리명왕 즉위하다 [기원전 19]

三國史記 권 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명왕(琉璃明王)이 즉위하였다. 이름은 유리(類利)인데 유류(孺留)라고도 한다. 주몽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예씨(禮氏)이다.

처음 주몽이 부여에 있었을 때 예씨의 딸에게 장가들어 그 여인이아이를 배었는데, 주몽이 떠나온 뒤 태어났으니 그 아이가 유리이다. 유리가어릴 때 길가에 나가 놀다가 참새를 쏘려다 잘못하여 물 긷는 부인의 항아리를 깨뜨렸다. 부인이 꾸짖어 말하기를, “이 아이는 아비가 없는 까닭에 이처럼 미련하구나.”라고 하였다. 유리가 부끄러워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묻기를, “저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나라에 용납되지 못하여 남쪽 땅으로 달아나서 나라를 열고 왕을 칭하였다. 떠날 때 나에게 일러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에게〕 「내가 물건을 남겨 두었는데,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에 감추어 두었다라고 말하시오. 만약 이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아이는곧 나의 아들이요라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유리는 그 말을 듣고 곧 산골짜기로 가서 그것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피곤하여 돌아왔다. 하루는 아침에 마루 위에 있는데 주춧돌 사이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다가가서 보니 주춧돌에 일곱 모가 있었다. 이에 기둥 아래를 뒤져서 부러진 칼 한쪽을 찾아냈다. 마침내 그것을 가지고 옥지(屋智)구추(句鄒)도조(都祖) 등 세 명과 함께 떠나 졸본에 이르러 부왕(父王)을 뵙고 부러진 칼을 바쳤다. 왕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부러진 칼을 꺼내어 이를 합치니 이어져 하나의 칼이 되었다. 왕이 이를 기뻐하며 유리를태자로 세웠는데, 이때에 이르러 왕위를 이었다.

 

  • 유리명왕(瑠璃明王) : 고구려 제2대 왕으로 이름은 유리·유류·누리 등으로 전한다. 본문에 따르면 유리명왕의 재위 기간은 B.C. 19~A.D. 18년에 이른다. 시조 주몽의 맏아들로서 주몽이 부여를 떠난 뒤 출생하여,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에 와서 태자로 세워진 이후 왕이 되었다. 다양한 세력을 편제하고 부여나 황룡국 등 인접 국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힘쓰면서도 선비와 양맥을 치고 한의 고구려현을 공격하는 등 세력 확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였으며, 재위 기간에 왕위 계승자[태자]나 왕자의 예기치 못한 죽음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고 전한다.
    한편 본서나 동명왕편에 인용된 구삼국사에 따르면 유리에게 신성한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주몽과 유리는 혈통이 다를 뿐 아니라, 소속 집단도 각기 계루부와 소노부로 구별되며, 유리가 무력으로 주몽 집단을 병합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고구려 왕실이 종전의 전승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왕계를 정립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부자 관계로 설정된 주몽과 유리는 같은 집단에 속하였다고 여겨진다.
  • 옥지(屋智)구추(句鄒)도조(都祖) : 유리가 아버지 주몽을 찾아 남하할 때 함께한 인물들. 주몽이 부여에서 떠날 때 오이·마리·협보가 동행하였던 것과 대응하는데, 동명왕편에 인용된 구삼국사에서는 이들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없다.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 왕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칼이 되었다 : 동명왕편에 인용된 구삼국사에서는 주몽과 유리가 가진 검의 단편이 합쳐질 때 피가 흘렀다고 하는 등 보다 극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를 2개의 세력 집단이 하나로 합쳐질 때, 무력이 개입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수신기(搜神記)11 삼왕묘(三王墓)에 따르면 적비(赤比)란 인물은 아버지가 돌 위에 솟은 나무 밑에 숨겨둔 검을 찾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의하면 아네테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도 돌 밑에 숨겨진 칼과 샌들을 찾아내 아버지 아이게우스[Aegeus]를 만난다. 그리고 한국 무속의 제석본풀이에서도 아비 없이 자란 아이들이 아버지를 만나 피가 합쳐지자 자식들로 인정받는 서사 단락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는 두 집단 간의 유혈 충돌을 암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상호 간의 친연 관계를 보여주는 모티프로 볼 수 있다.
    참고로 구삼국사에서는 칼을 맞춰본 뒤에도 주몽이 유리에게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하였으며, 이에 유리가 몸을 들어 공중에 솟구쳐 올라 창에 비치는 해에 타는[“擧身聳空, 乘牖中日”] 이적을 보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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