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나물이사금(奈勿尼師今, AD 356~402) 9년 : 기원후 364년
▶ 왜병이 쳐들어오자 이를 물리치다 : 364년 04월(음)
- 九年, 夏四月, 倭兵大至,王聞之, 恐不可敵, 造草偶人數千. 衣衣持兵, 列立吐含山下, 伏勇士一千於斧峴東原. 倭人恃衆直進, 伏發擊其不意. 倭人大敗走, 追擊殺之幾盡.
- 9년(364) 여름 4월에 왜병(倭兵)이 대거 이르렀다. 왕이 이를 듣고 대적할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하여, 풀로 허수아비 수천 개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무기를 들려서 토함산(吐含山)[1] 아래에 나란히 세워두고, 용맹한 군사 1,000명을 부현(斧峴)[2]의 동쪽 들판에 매복시켰다. 왜인(倭人)이 무리가 많음을 믿고 바로 나아가니, 매복한 군사가 일어나 불의에 공격하였다. 왜인이 대패하여 달아나자 추격하여 그들을 거의 다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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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토함산(吐含山) : 경주시의 동쪽에 위치한 산.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남해차차웅 11년(14)조 기사의 주석 참조.
- 부현(斧峴) : 위치 미상. 본서에 ‘부현(斧峴)’은 모두 4차례 나오는데, 신라본기에 1차례, 백제본기 온조왕 8년(B.C.11) 말갈을 대부현(大斧峴)까지 추격해 싸워 이겼다는 데에 1차례, 온조왕 40년(A.D.22) 말갈이 부현성(斧峴城)을 습격했다는 데에 1차례, 그리고 지리지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1차례 등이다. 백제본기의 대부현과 부현성은 ‘말갈’의 침입로와 관련이 있는 동일한 장소로 볼 수 있지만, 이 기사의 부현은 별개의 장소가 분명하다. 기사의 내용으로 보아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인근의 고개로 추정되나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