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대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AD 262~284) 3년 : 기원후 264년
▶ 동쪽으로 가 바다에서 망제를 지내다 : 264년 02월(음)
- 三年, 春二月, 東巡幸望海.
- 3년(264) 봄 2월에 왕이 나라 동쪽으로 가 바다에서 망제(望祭)[1]를 지냈다.
▶ 황산으로 가 백성들을 진휼하다 : 264년 03월(음)
- 三月, 幸黄山, 問髙年及貧不能自存者, 賑恤之.
- 〔3년(264)〕 3월에 왕이 황산(黃山)[2]으로 행차하여, 늙고 가난하여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진휼하였다.
==========
[각주]
- 망제(望祭) :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쪽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해가 있을 때 왕후(王侯)가 영내의 명산과 대천 혹은 바다를 멀리에서 바라보며 재앙을 물리쳐 주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
- 황산(黃山)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22 경상도 양산군(梁山郡) 산천(山川)조에 황산강이 양산군의 서쪽 18리에 있으며, 신라에서 4대독(四大瀆)의 하나이면서 중사(中祀)에 해당하고, 고려에서는 무안(務安)의 용진강(龍津江)과 광양(光陽)의 섬진강(蟾津江)과 황산강을 배반하여 흐르는 3대수(三大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동서 권32 경상도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산천(山川)조에는 황산강(黃山江)이 김해도호부 동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양산군(梁山郡)과의 경계가 되며, 이어 낙동강이 남쪽으로 흘러 도호부의 북쪽 뇌진(磊津)에 이르고, 다시 동쪽으로 흘러 옥지연(玉池淵)에 이르러 황산강(黃山江)가 된다고 하였다. 이를 볼 때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서 하구의 을숙도(乙淑島) 사이 구간 낙동강이 황산하(黃山河)였다고 추정된다(金泰植, 1993, 『加耶聯盟史』, 一潮閣, 70쪽).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황산은 그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