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 BC 57 ~ AD 4) 4년 : 기원전 54년
일식이 일어나다 : 기원전 54년 04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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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年, 夏四月辛丑朔, 日有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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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B.C. 54) 여름 4월 신축(辛丑) 초하루에 일식(日食)이 있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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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일식(日食)이 있었다 : 일식은 해가 달에 의해 가려지는 현상으로, 구체적으로는 해가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皆旣)일식, 일부만 가려지는 부분일식, 해의 가장자리만 남아 마치 가락지[環]처럼 보이는 금환(金環)일식 등이 있다. 일식이 일어나는 시기는 달이 해와 지구 사이의 일직선상에 위치하게 되는 음력 초하루(삭일: 朔日) 무렵 한낮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천(天)이 인간과 교감하면서 인사(人事)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른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이 유행하였는데, 이런 관념은 인간이 재이(災異)나 상서(祥瑞) 등의 징조를 통해 천의 의지를 파악함으로써 천과 호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천인감응설은 한(漢) 무제 때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립된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세계의 현실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정사류나 『삼국사기』 등의 사서에 일식을 비롯한 천문 및 자연 이변 관련 기사가 다수 수록된 것은 이런 관념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본서에는 신라본기에 30건, 고구려본기에 11건, 백제본기에 26건 등 도합 67건의 일식 기사가 실렸는데, 신라의 경우 30건 가운데, 시조 혁거세거서간 대에 7건, 제2대 남해차차웅부터 제12대 첨해이사금 대까지 12건 등 도합 19건이 초반부에 몰려 있고, 이후 한참 동안 관련 기사가 보이지 않다가 하대에 들어가 제38대 원성왕 대를 시작으로 나머지 11건이 확인된다. 신라본기 초반부에 집중적으로 보이는 일식 기사는 신라 자체의 관측 기록이 아니라 『한서』, 『후한서』 등의 중국 측 사서의 해당 기록을 전재(轉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飯島忠夫, 1925; 김일권, 2016). 실제로 본서에서 일식 관련 기사로서는 처음 나오는 본 기사의 경우, 『한서』 권27 오행지에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다. 한편 신라본기의 초반부에 실린 관련 기록은 중국에서 관측된 정보가 낙랑군으로부터 입수되어 내부 전승을 통해 내려와 『삼국사기』에 수록된 것이며 후반부 즉 통일신라 시대의 관련 기록은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관측한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김용운·김용국, 2009).〈참고문헌〉飯島忠夫, 1925, 「三國史記の日食記事に就いて」, 『東洋學報』 15-3, 東洋文庫大谷光男, 1972, 「三國史記の日食記事について」, 『朝鮮學報』 62, 朝鮮學會玄正晙, 1979, 「韓國의 古代日食記錄에 관하여」, 『東方學志』 22李熙德, 1980, 「三國史記에 나타난 天災地變記事의 性格」, 『東方學志』23·24김용운·김용국, 2009, 『한국 수학사』, 살림Math김일권, 2016, 「《삼국사기》 일식기록의 한중 사료 대조와 일식상황 비교」, 『新羅史學報』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