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3일 수요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3대 유리이사금(AD 24~57) 5년 : 기원후 28년

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AD 24~57) 5: 기원후 28

 

순행하고 구휼하다 : 2811()

 

  • 五年, 冬十一月, 王巡行國内. 見一老嫗飢凍將死, , “予以眇身[정덕본·을해목활자본에는 으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에는 으로 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는 을 따랐다.]居上, 不能養民, [정덕본에는 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使로 되어 있다. 문맥상 使가 옳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도 使를 따랐다.]老㓜至於此極. 是予之罪也.” 解衣以覆之, 推食以食之. 仍命有司, 在䖏存問, 鰥寡孤獨老病不能自活者, 給飬之. 於是, 鄰國百姓, 聞而来者衆矣. 是年, 民俗歡康, 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 5(28) 겨울 11월에 왕이 나라 안을 순행하였다. 할멈 한 명이 굶주린 채 몸이 얼어서 장차 죽게 된 것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부족한 사람인데도 윗자리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제대로 기르지를 못하여 늙은이나 어린이들을 이처럼 참혹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죄이다.”라고 하고 옷을 벗어 덮어주고 음식을 건네 먹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담당 관청에게 명을 내려 곳곳마다 홀아비와 홀어미, 고아나 독거노인, 늙고 병들어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자들을 찾아서 살펴 먹을 것을 주어 부양하게 하였다. 이에 이웃 나라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듣고서 찾아온 자들이 많았다. 이 해에 백성들 사이에서 평안함을 기뻐하며 처음으로 도솔가(兜率歌)[1]를 지었으니, 이것이 가악(歌樂)의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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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도솔가(兜率歌) : 유리이사금 때 백성들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 현재 전해지지 않으나, 삼국유사권제1 기이제1 3 노례왕(第三弩禮王)조에는 처음으로 도솔가를 지었는데, 차사(嗟辭)와 사뇌격(詞腦格)이 있다.”라고 하여, 차사 즉 감탄사가 들어간 구절과 사뇌가의 음격이 갖추어진 노래로 추정된다(姜仁求 , 2002, 譯註 三國遺事 1, 以會文化社, 244). ‘도솔가라는 이름의 노래는 통일신라 시대인 경덕왕 19(760)에 월명사(月明師)라는 승려가 지은 향가로도 전해지는데( 삼국유사권제5 감통제7 월명사 도솔가조), 본 기사에서의 도솔가와는 다른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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