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대 진흥왕(眞興王 AD 540~576) 19년 : 기원후 558년
▶ 귀족 자제와 왕경인들을 국원에 옮겨 살게 하다 : 558년 02월(음)
- 十九年, 春二月, 徙貴戚子弟及六部豪民, 以實國原.
- 19년(558) 봄 2월에 귀족 자제와 6부(六部)[1]의 부유한 백성[豪民]을 옮겨 국원(國原)을 채웠다.[2]
▶ 나마 신득이 포노를 만들다 : 558년 (음)
- 奈麻身得作砲弩上之, 置之城上.
- 〔19년(558)〕 나마(奈麻) 신득(身得)[3]이 포노(砲弩)[4]를 만들어 바치니, 그것을 성 위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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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6부(六部) : 신라의 수도인 왕경에 설치한 6개의 행정구획을 이른다. 6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서 권제1 신라본기제1 유리이사금 9년 봄 참조.
- 귀족 자제와 … 국원(國原)을 채웠다 : 국원에 소경(小京)을 설치하고, 귀족의 자제와 왕경(경주) 6부의 부유한 사람들을 이주시켜 개발한 것으로 이해한다. 한편 본서 권제46 열전제6 강수조에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인 강수(强首)가 중원경(中原京) 사량인(沙梁人)이라고 전하는데, 이를 통해 가야인들도 국원에 천사(遷徙)시켰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원소경을 비롯한 통일신라의 5소경에도 왕경과 마찬가지로 행정구획으로서 6부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전덕재). 반면에 소경에 6부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이해하는 견해도 제기되었다(서영일, 이인철, 188~189쪽). 한편 소경으로 이주한 왕경인들의 경우는 왕경 6부에 편적지(編籍地)를 두어 골품 신분으로서의 특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하일식).〈참고문헌〉이인철, 1993, 『신라정치제도사연구』, 일지사서영일, 1999, 「안성 비봉산성 수습 「本彼」銘 기와 고찰」, 『문화사학』 11ㆍ12全德在, 2002, 「新羅 소경의 설치와 그 기능」, 『震檀學報』 93하일식, 2011, 「신라 왕경인의 지방 이주와 編籍地」, 『新羅文化』 38
- 신득(身得) : 관등이 나마(奈麻)로서 진흥왕 19년(558)에 포노(砲弩)를 만든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 포노(砲弩) : 한 번에 여러 개의 화살을 쓸 수 있는 무기, 즉 다발식(多發式) 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