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대 법흥왕(法興王, AD 514~540) 8년 : 기원후 521년
▶ 양에 사신을 보내다 : 521년 (음)
- 八年, 遣使於梁, 貢方物.
- 8년(521)에 양(梁)나라[1]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方物]을 바쳤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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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양(梁)나라 : 양나라(502~557)는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의 세 번째 왕조이다. 소연(蕭衍)이 건국하였기 때문에 소량(蕭梁)이라고도 한다.
-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方物]을 바쳤다 : 『양서(梁書)』 권3 무제(武帝) 보통(普通) 2년(521)조에 이 해 겨울 11월에 백제와 신라가 각기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고 전하고, 같은 책의 권54 열전제48 제이(諸夷) 동이(東夷) 신라조에는 보통 2년에 왕의 〔성씨가〕 모(牟), 이름인 진(秦)이 처음으로 백제를 따라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고 전한다. 이 밖에 『남사(南史)』, 『통전(通典)』, 『책부원귀(冊府元龜)』,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에도 보통 2년에 신라가 사신을 파견하였다고 전한다. 본 기록에 보통 2년(521) 11월이 아니라 단지 보통 2년에 신라가 양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고 전하므로, 본서의 찬자는 『양서』 신라조의 기록을 인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법흥왕 8년(521)에 신라 사신은 백제 사신의 통역을 매개로 양나라 사람들과 소통하였다고 알려졌다. 한편 양나라 소역(蕭繹)이 편찬한 『양직공도(梁職貢圖)』에 사라(斯羅), 즉 신라 등이 백제의 부용국(附庸國)이었다고 전하는데, 백제 동성왕이 신라의 왕녀(王女)가 아니라 이벌찬(또는 이찬) 비지(比智)의 딸과 혼인한 정황을 감안하건대, 신라가 백제의 부용국이라고 자처하였을 가능성은 높지 않고, 6세기 전반 백제의 신라에 대한 일방적인 인식을 반영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李弘稙, 1965; 1971, 417쪽; 李鎔賢).〈참고문헌〉李弘稙, 1965, 「梁 職貢圖 論考」, 『고려대학교개교60주년기념논문집(인문과학편)』; 1971, 『韓國古代史의 硏究』, 新兵文化社李鎔賢, 1999, 「《梁職貢圖》百濟國使條の 〈旁小國〉」, 『朝鮮史硏究會論文集』 37, 朝鮮史硏究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