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3일 일요일

[로마 제국] 제8대 황제 : 비텔리우스(Vitellius, AD 69)

비텔리우스(Vitellius, AD 69)

 

  • 로마 제국 제8대 황제(재위 : 69416~ 691222)
  • 출생일 : 15924
  • 사망일 : 691222

 

비텔리우스(Vitellius)

배우자

  • 케트로니아
  • 갈레리아 푼다니아

 

# 명문가 출신의 비텔리우스

 

비텔리우스는 15924, 티베리우스 황제의 신임을 받았던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와 그의 아내 섹틸리아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비텔리우스의 아버지는 티베리우스의 신임 아래 집정관을 지냈고 시리아 속주 총독을 역임하였으며, 어머니 섹틸리아는 명문가 출신으로 마르쿠스 섹틸리우스의 딸이었다.

 

50년경 비텔리우스는 가이우스 갈레리우스의 딸 갈레리아 푼다나와 결혼했다. 그의 장인 가이우스 갈레리우스는 티베리우스 시대에 이집트 장관을 지낸 잘나가는 집안이었다.

 

# 아부꾼, 네로가 그의 롤모델?

 

양쪽 집안이 잘나가는 집안이었고, 비텔리우스 자신의 아부 능력으로 인해서 비텔리우스는 네로 시대까지 승승장구하였다. 그는 또한 네로를 진심으로 존경했다고 한다. 네로가 몰락한 후 비텔리우스는 갈바에 의해 하()게르마니아의 사령관에 임명되었다(68).

 

# 게르마니아 군단의 사령관으로 부임, 황제로 추대되다

 

하게르마니아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 엄격한 규율을 유연하게 다루면서 인기를 얻었는데, 6912일에 갈바에게 불만을 품은 군단병들에 의해 쾰른에서 황제로 추대되었다. 비텔리우스가 능력이 있어서 추대된 게 아니라 갈바가 로마에서 삽질하면서 대안 세력으로 선택된 것이다. 이후 갈리아, 브리타니아, 라이티아 군단들도 비텔리우스를 지지하면서 반갈바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 함량 미달의 황제

 

부하들이 먼저 로마로 진격하였고, 정작 비텔리우스 자신은 느긋하게 환락과 축제, 술파티를 벌이며 천천히 로마로 진군하였다. 그의 부하 장군 발렌스와 카이키나가 크레모아 전투에서 오토를 이긴 직후 6월 말에 로마에 입성하였다. 로마에 입성한 비텔리우스는 내전의 상처를 수습하기는커녕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였다. 오토를 따랐던 도나우 군단의 백인대장들을 처형하고 병사들을 크레모나 시의 원형경기장 공사에 강제로 투입시키는 어이없는 행동을 하였다.

 

로마에 입성한 후 오토의 형 살비우스 티티아누스를 사면시켜주고, 오토 측 인사들에게 보복하지 않은 점을 제외하고는 삽질의 연속이었다. 로마의 근위대를 해체시키고 라인강 군단 병사들로 새롭게 근위대를 꾸렸다. 혼란을 야기시킨 네로를 대놓고 칭찬하고 찬양하였고 국정은 돌보지 않고 향락에 치중했다.

 

# 도나우 군단의 반란

 

비텔리우스에게 적대적인 도나우 군단이 시리아 총독 무키아누스를 옹립하려고 했을 때, 무키나우스는 자신이 직접 황제에 오르는 대신 유대반란 진압군의 총사령관인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비텔리우스 타도를 외치며 로마로 진격하였다.

 

# 퇴위도 마음대로 못하는 황제

 

비텔리우스의 부하인 카이키나가 도나우 군단에게 패하고 사로잡히자 상황을 인지한 비텔리우스는 1216일에 퇴위를 선언했다. 원로원이 비텔리우스의 퇴위 선언을 받아들여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때, 궁지에 몰린 비텔리우스의 패잔병들이 베스파시아누스의 형인 사비누스를 살해하고 유피테르 신전을 불태우는 짓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되어도 비텔리우스는 무기력하게 먹는 일만 하면서 시간을 때웠고, 전직 아프리카 총독이자 원로원 의원인 동생 루키우스 비텔리우스가 혼자서 기병 500을 이끌고 도나우 군단에 최후까지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항복하고 만다.

 

# 조리돌림 후 참수당함

 

비텔리우스는 로마 시를 탈출하려다가 로마를 점령한 도나우 군단에 의해 붙잡히게 되었고, 병사들에 의해 개끌리듯 끌려나왔다. 거의 반나체로 로마 시내로 끌려간 비텔리우스는 분노한 시민들과 도나우 군단 병사들에게 포로 로마노에서 갖은 모욕과 고문을 당한 뒤에 참수되었다. 시체는 티베르 강에 던져졌으며 잘린 머리는 장대에 꽂혀 퍼레이드 행렬에 동원되었다. 그의 아들과 동생도 같은 날 살해되었다.

 

# 비텔리우스에 대한 평가

 

비텔리우스가 죽기 직전에 군인들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 살해되려 할 때, 군인들에게 나는 그래도 한때나마 너희들의 황제였었다라고 외쳤는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 일화를 언급하면서 살아 생전에 그가 황제답게 행동한 유일한 모습이었다라고 비웃었다. 로마인들은 자기 실력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적절한 장소에 있던 덕분에 운 좋게 오르지 말아야 할 자리까지 오른 인간으로 비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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