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3일 일요일

[로마 제국] 제6대 황제 : 갈바(Galba, AD 68~69)

갈바(Galba, AD 68~69)

 

  • 로마 제국 제6대 황제(재위 : 6869~ 69115)
  • 출생일 : 기원전 31224
  • 사망일 : 기원후 68115[70]

 

갈바(GalBa)

배우자

  • 아이밀리아 레피다

 

자녀

  •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리키니아누스 (입양)

 

# 명문 귀족 출신의 갈바

 

갈바의 가문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로마의 명문 귀족 가문이었으며 로마 상류층 내에서도 매우 부유하였다. 갈바의 증조부는 당대 최고의 웅변가로 이름을 날렸던 집정관 세르비우스 갈바의 손자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부관으로 갈리아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갈바의 할아버지는 정치인이었지만 역사학자로 명성이 있었고, 갈바의 부친은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갈바의 친어머니 뭄미아 아카이아는 코린트를 함락시킨 영웅 루키우스 뭄미우스의 증손녀였다.

 

# 정치가로의 여정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는 기원전 31224일에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서기 20, 23살의 나이로 법무관에 임명되었다. 33년에는 집정관에 임명되었고, 39년에는 칼리굴라에 의해 라인 강 방위군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45년에 북아프리카 총독에 임명되었고, 49년에 소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였을 때 갈바는 소 아그리피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10년 정도 정치에서 은퇴생활을 하였다. 61년에 이베리아 반도 북동부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 포스트 네로 시대를 위해 준비된 후보?

 

68년 네로 황제가 자기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믿고 갈리아 지방 루그두넨시스 총독 빈덱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네로에 대항하는 반란군의 지도자가 되었다. 당시 많은 로마인들이 네로가 물러가면 차기 황제감으로는 갈바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네로는 근위대에게 배반당해 6869일 자살했다)

 

# 황제 즉위후 삽질하는 갈바

 

원로원에서 갈바는 정식으로 황제로 추대되었는데 속주에서 로마까지 오는 데 세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였다. 로마에 입성하자마자 많은 고관들을 처형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자신의 즉위를 도왔던 근위대장 님피디우스 사비누스도 들어 있었다.

 

갈바는 빈덱스의 반란을 제압한 라인 강 일대의 게르마니아 군단의 사령관 루푸스를 해임하였는데, 이것이 그들을 자극하였다.

 

# 오토의 쿠데타, 갈바의 죽음

 

결국 6912일에 라인 강 방위군이 갈바가 황제가 된 데에 불만을 품고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는 또 근위대가 네로를 배반한 데 대한 보상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하였고, 110일에 근위대의 지지를 받던 루시타니아 전() 총독 오토 대신에 루키우스 피소 리키니아누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하였는데, 자신이 갈바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오토를 분노케하여 오토의 쿠데타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토는 115일에 황제를 수행하던 중 일행에서 빠져나와 근위대에 접근하여 황제로 추대되었다. 갈바는 이에 당황하여 반란군과 대항하려 했으나 오토 측의 기병에 공격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 갈바에 대한 평가, 검증되지 않았던 나이많은 유망주?

 

네로의 몰락이 시작된 68년 빈덱스의 반란 당시, 갈바는 타키투스가 기록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제국 통치의 최고 책임자로는 누구보다도 갈바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제위에 욕심이 있던 이들도 갈바를 앞세워 그를 중심으로 네로에게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갈바는 제위에 대한 야망만 남았을 뿐 젊은 시절 보여준 공정함과 엄격함, 성실함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1년도 채 안 되는 통치 기간 동안 자신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사태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실책을 저질렀고, 결국 이는 황제의 자리를 놓고 6912월까지 내전이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동시대 로마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제국 통치의 최고 책임자로는 누구보다도 갈바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실제로 제국 통치를 맡겨보기 전까지는이라는 혹평을 남겼다고 한다.


어쩌면, 너무 늦은 나이에 황제가 올랐기 때문에 조급함이 있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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