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 AD 184~196) 3년 : 기원후 186년
▶ 주·군을 순행하다 : 186년 01월(음)
- 三年, 春正月, 巡幸州郡, 觀察風俗.
- 3년(186) 봄 정월에 주(州)·군(郡)[1]을 돌아다니며 풍속을 살펴보았다.
▶ 일식이 나타나다 : 186년 05월(음)
- 夏五月壬申[정덕본·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申으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에는 辰으로 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는 辰을 따랐다.]晦, 日有食之.
- 〔2년(186)〕 여름 5월 임진(壬辰)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2]
▶ 남신현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바치다 : 186년 07월(음)
- 秋七月, 南新縣進嘉禾.
- 〔3년(186)〕 가을 7월에 남신현(南新縣)[3]에서 상서로운 벼이삭[嘉禾][4]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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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주(州)·군(郡) : 단계 지방행정단위 중 최상위와 중간 단위이다. 여기에서의 주와 군은 당시 실제 사용되던 행정단위명이 아니라 후대에 윤색된 용어이며, 이 기사에서 주·군은 영역 내를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 임진일(壬辰日)에 일식이 있었다 : 일식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혁거세거서간 4년(B.C.54) 4월조의 주석 참조. 이 일식 기사는 『후한서(後漢書)』 권8 효영제기(孝靈帝紀) 중평(中平) 3년(186) 5월조(“五月壬辰晦,日有食之”)를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원문에는 일간지(日干支)가 ‘임신회(壬申晦)’라고 잘못 적혀있다. 본서 권16 고구려본기4 고국천왕 8년(186) 5월조에도 동일한 일식 기사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는 일간지가 임진으로 맞게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일식은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일식이었다고 한다(김일권, 2016 「《삼국사기》 일식기록의 한중 사료 대조와 일식상황 비교」, 『新羅史學報』 37, 181~183쪽).
- 남신현(南新縣) :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도 기재된 위치 미상의 신라 지방행정단위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파사이사금 5년(84) 5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
- 상서로운 벼이삭[嘉禾] : 한 줄기 벼에서 두 개 이상의 이삭이 팬 것을 말하는데, 왕의 덕이 성할 때 생겨난다는 믿음이 있다. 상서(祥瑞)로운 징조가 나타났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