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6일 토요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9대 벌휴이사금(AD 184~196) 1년 : 기원후 184년

9대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 AD 184~196) 1: 기원후 184

 

벌휴이사금이 즉위하다 : 18403()

 

  • 伐休 一作發暉.尼師今立. 姓昔, 脫解王子仇鄒角干之子也. 母姓金氏, 只珍内禮夫人. 阿逹羅薨, 無子, 國人立之. 王占風雲, 預知水旱及年之豐儉, 又知人邪正, 人謂之聖.
  •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1] 어떤 책에서는 발휘(發暉)라 되어있다.이 왕위에 올랐다. 왕의 성은 석씨(昔氏)로 탈해왕(脫解王)[2]의 아들인 각간(角干)[3] 구추(仇鄒)[4]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성이 김씨인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5]이다. 전왕인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6]이 죽었는데 왕위를 계승할아들이 없어서 나라 사람들이 벌휴를 왕으로 세웠다.[7] 왕은 바람과 구름을 점쳐서 홍수와 가뭄 및 그해의 풍흉[豊險]을 미리 알 수 있었고, 또한 사람의 사악함과 정직함도 알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성인(聖人)이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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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 : 신라 제9대 왕으로 생년은 미상이고 재위기간은 184196년이다. 이름을 발휘(發暉)라고도 했는데, 벌휴와 동일 발음의 이표기이다. 본서에 나오는 가족관계를 보면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의 아들인 각간(角干) 구추(仇鄒)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씨인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이다. 부인과의 사이에 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과 이매(伊買)을 두었다. 그는 탈해이사금의 손자라 기록되어 있지만, 탈해 사후 104년 만에 즉위하여 시간 격차가 심하므로, 그 실제 혈연관계를 의심하는 경향이 강하다(趙榮濟, 6~7; 千寬宇, 299). 즉 벌휴가 즉위하면서 석씨계임을 자칭했을 뿐 실제로 탈해의 손자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한편 그의 모친이 김씨로 나오고, 그의 재위기간 중 김씨인 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고려하면, 박씨 세력이 왕위계승권을 상실할 정도로 약화되고, 석씨와 김씨계가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한다(강종훈, 135~136).
    참고문헌
    趙榮濟, 1983, 新羅上古 伊伐湌伊湌에 대한 一考察, 釜山史學7
    千寬宇, 1989, 古朝鮮三韓史硏究, 一潮閣
    강종훈, 2000, 신라상고사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 탈해왕(脫解王) : 신라의 제4대 왕 탈해이사금으로, 왕이라는 표현은 후대에 고친 것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탈해이사금 즉위년(57)조 기사의 탈해이사금에 대한 주석 참조.
  3. 각간(角干) : 각간은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일 높은 이벌찬(伊伐湌)의 이칭이다. 여기에서 각간은 신라 제1관등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초기 6부 연합체적 국가였던 신라를 구성하던 핵심 지배집단의 수장이자 다른 수장들을 대표하는 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유리이사금 9(32)조 기사와 지마이사금 즉위년(112)조 기사의 주석 참조.
  4. 구추(仇鄒) : 벌휴이사금의 아버지로 탈해이사금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탈해와의 실제 혈연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벌휴의 즉위 시점이 탈해 사후 104년이 지난 시점이어서 너무 시간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실제로는 탈해(脫解)와 무관한 벌휴계(伐休系)가 북방에서 남하하여 경주에 도착한 후, 신라에서 토함산신(吐含山神)으로 숭배되고 있던 탈해와 자신의 가계를 연결하여 탈해의 후손을 자칭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千寬宇, 1989, 古朝鮮史·三韓史硏究, 一潮閣, 300).
  5.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 : 내례부인은 아달라이사금의 왕비이기도 하며 나해이사금의 모친, 곧 벌휴의 차남 이매의 부인이라고도 한다. 지진내례부인과 두 내례부인과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박씨인 아달라왕비와 달리 벌휴왕비인 지진내례부인은 김씨이기도 해서 다른 사람으로 추정된다.
  6.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 신라 제8대 왕이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아달라이사금 즉위년(154)조의 아달라이사금에 대한 주석 참조.
  7.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왕으로 세웠다 : 아달라이사금 사후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어 석씨계인 벌휴가 왕위에 추대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신라 하대에 제53대 신덕왕(神德王)이 아달라이사금의 후손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하므로, 그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아달라이사금 말년 10년간의 기록이 비어있어서, 정치적 분쟁을 거쳐 벌휴가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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