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아달라이사금(阿逹羅尼師今, AD 154~184) 14년 : 기원후 167년
▶ 백제가 나라 서쪽의 두 성을 격파하고 포로를 잡아가다 : 167년 07월(음)
- 十四年, 秋七月, 百濟襲破國西二城, 虜獲民口一千而去.
- 14년(167) 가을 7월에 백제가 나라 서쪽에 있는 두 성을 기습 공격하여 격파하고 백성 1,000명을 포로로 잡아갔다.[1]
▶ 백제에 반격하여 이기자 백제가 화친을 청하다 : 167년 08월(음)
- 八月, 命一吉飡興宣, 領兵二萬伐之. 王又率騎八千, 自漢水臨之. 百濟大懼, 還其所掠男女乞和.
- 〔14년(167)〕 8월에 일길찬(一吉湌)[2] 흥선(興宣)[3]에게 명령하여 병사 20,000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게 하였다. 왕이 또한 직접 기병 8,000명을 통솔하여 한강[漢水]을 따라 나아가 〔두 성에〕 이르렀다.[4] 백제가 크게 두려워하여 잡아갔던 남녀들을 돌려보내고 화해할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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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백제가 … 포로로 잡아갔다 : 본서 권23 백제본기1 초고왕 2년(167) 7월조에 동일한 내용이 실려있다.
- 일길찬(一吉湌) : 신라 경위(京位) 17관등(官等) 중 제7등에 해당한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일길찬에 대한 주석 참조.
- 흥선(興宣) : 아달라이사금대에 활동한 생몰년 미상의 인물로, 아달라이사금 2년(155) 1월 아달라이사금이 직접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고 그를 일길찬에 임명하였다. 이 기사는 임명 이후 그가 백제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서인지 그는 다음 해인 아달라이사금 15년(168) 4월 죽은 계원을 대신하여 이찬이 된다.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 왕이 또한 … 〔두 성에〕 이르렀다 : 본서 권23 백제본기1 초고왕 2년(168) 8월조에 같은 사건이 기재되어 있는데, 내용이 조금 다르다. 본 기사에서는 아달라이사금이 한강에서 출발하여 전장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지만, 백제본기에서는 왕이 군사를 이끌고 전장인 한강에 이른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