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5일 금요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8대 아달라이사금(AD 154~184) 1년 : 기원후 154년

8대 아달라이사금(阿逹羅尼師今, AD 154~184) 1: 기원후 154

 

아달라이사금이 즉위하다 : 15402()

 

  • 阿逹羅尼師今立. 逸聖長子也. 身長七尺, 豐凖有竒相. 母朴氏, 支所禮王之女. 妃朴氏内禮夫人, 祇摩王之女也.
  •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1]이 왕위에 올랐다.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2]의 장남이다. 키가 7척이며 코가 매우 커 외모가 특별하였다. 어머니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3]이다. 왕비 박씨 내례부인(內禮夫人)[4]은 지마왕(祇摩王)[5]의 딸이다.

 

계원을 이찬에 임명하다. : 15403()

 

  • 元年, 三月, 以繼元爲伊飡, 委軍國政事.
  • 원년(154) 3월에 계원(繼元)[6]을 이찬(伊湌)[7]에 임명하여 군사와 국정을 맡겼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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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 생몰년은 미상~184년이며, 154184년까지 재위한 신라 제8대 왕이다. 본명은 박아달라(朴阿達羅)로 되어있지만, 당시 성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왕호는 이사금이다. 가족 관계를 보면 아버지는 전왕인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이며, 어머니 박씨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이라 하였다. 배우자는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이다. 내례부인은 6대 왕인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의 딸로, 계보상 아달라이사금의 5촌 조카이다.
    아달라이사금은 신라 상대 마지막 박씨왕으로, 그의 사후 아들이 없어 석씨가 왕위를 계승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53대 신덕왕(神德王)이 아달라이사금의 후손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하므로, 그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2.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 신라 제7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34~154년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일성이사금 즉위년(134)조의 주석 참조. 
  3.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 : 본서에 의하면 일성이사금의 부인은 지소례왕의 딸이라고 하나, 삼국유사(三國遺事)권제1 왕력제1에 일성이사금의 왕비가 지마이사금의 딸 례부인(禮夫人)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어 혼란이 있다. 그러나 이는 아달라이사금의 배우자 정보가 잘못 들어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지소례왕은 왕비의 아버지이므로 갈문왕(葛文王)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李基白, 1973, 新羅時代葛文王,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4. 내례부인(內禮夫人) : 본서의 나해이사금 즉위년(196)조에 의하면, 나해이사금의 어머니 이름도 내례부인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내례부인은 벌휴이사금의 둘째 아들인 이매(伊買)의 부인이 되어야 한다. 이 두 내례부인을 동명이인이거나 기록의 오류로 보기도 하지만, 같은 사람으로 파악하기도 한다(강종훈, 2000, 신라상고사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44). 또 본서의 벌휴이사금 즉위년(184)조에는 어머니가 김씨 지진내례부인(金氏 只珍內禮夫人)이라 되어 있다.
  5. 지마왕(祇摩王) : 신라 제6대 왕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으로 왕이란 표현은 후대의 개칭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즉위년(112)조의 주석 참조.
  6. 계원(繼元) : 아달라이사금 즉위와 함께 이찬(伊湌)이 되어 군국정사(軍國政事)를 책임졌다. 그는 아달라이사금 15(168) 4월에 사망할 때까지 그 직위와 직무를 수행했던 당시 최고 관직자였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기록은 없다.
  7. 이찬(伊湌) : 신라 경위(京位) 17관등(官等) 중 제2등에 해당하는 것이다. 본서 권38 잡지7 직관상과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32)조의 17관등 설치 기사에는 이척찬(伊尺飡)이 대표 이름으로 되어 있고, 이찬이 이칭으로 적혀있다. 그러나 신라본기 기사들에서는 모두 이찬으로 표기된다. 금석문에서는 일간지(壹干支), 이간지(伊干支), 일척간(一尺干), 이간(伊干), 을찬(乙粲) 등으로 나온다. 이중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에 나오는 일간지를 이찬이 아니라 일길간지(一吉干支)로 보는 견해도 일부 있지만, 이찬의 원형으로 보는 것이 다수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32)조 기사의 이척찬에 대한 주석 참조.
  8. 군사와 국정을 맡겼다 : 신라 초기에 서불한(舒弗邯)이벌찬(伊伐湌)이나 이찬(伊湌)의 임명 기사에 그들에게 군사와 국정운영을 맡겼다는 내용이 함께 있는 것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나 국정운영 중 하나만 나오기도 하지만, 이 당시 이들이 책임을 맡았던 군사와 국정이 엄격히 구분되는 업무 분야였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여겨진다. 이찬 등이 관직이 아니므로, 군사와 국정이 이찬 등의 고정적인 직무라 하기는 힘들고, 아직 관직과 관등이 분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 직위의 역할을 서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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