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3일 화요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23대 법흥왕(法興王, AD 514~540) 12년 : 기원후 525년

23대 법흥왕(法興王, AD 514~540) 12: 기원후 525

 

대아찬 이등을 사벌주 군주로 삼다 : 52502()

 

  • 十二年, 春二月, 以大阿湌伊登爲沙伐州軍主.
  • 12(525) 2월에 대아찬(大阿飡) 이등(伊登)[1]을 사벌주(沙伐州)[2] 군주(軍主)[3]로 삼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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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이등(伊登) : 법흥왕 12(525) 2월에 사벌군주(沙伐軍主)에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2. 사벌주(沙伐州) : 오늘날 경북 상주시에 비정된다. 본서 권제34 잡지제3 지리1 상주조에 상주(尙州)는 첨해왕(沾解王) 때에 사벌국(沙伐國)을 빼앗아 주()로 삼은 것이었다. 법흥왕 11(524), ()나라 보통(普通) 6(525)에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두어 상주(上州)로 삼았다. 진흥왕 18(557)에 주를 폐지하였다.”라고 전한다. 본서 권제4 신라본기제4 진흥왕 18년조에 사벌주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다고 전하고, 본서 권제4 신라본기제4 진평왕 36(614) 2월조에서 사벌주를 폐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였다.”라고 하였다. 지리1에 전하는 법흥왕 11년은 법흥왕 12년의 오기이다.
    이상의 기록과 본 기록을 근거로 하여 다음과 정리할 수 있다. 법흥왕 12(525)에 사벌주 또는 상주를 설치하고 그곳에 군주를 파견하였다가 진흥왕 18(557)에 사벌주 또는 상주를 폐하였다. 그 이후부터 진평왕 36(614) 사이에 오늘날 경북 김천시 개령면으로 비정되는 감문주를 폐하고 다시 사벌주 또는 상주를 설치하였다. 6142월에 사벌주를 폐하고 오늘날 경북 구미시 선산읍으로 비정되는 일선주를 설치하였다. 이후 신문왕 7(687) 3월에 일선주를 폐하고 사벌주를 다시 설치하였다(본서 권제8 신라본기제8 신문왕 73월조). 경덕왕 16(757)에 신라는 사벌주를 상주(尙州)로 고쳤다(본서 권제34 잡지제3 지리1 상주조).
    진흥왕 22(561)에 건립된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에 상주(上州)란 주명(州名)이 보이고, 사훼부(沙喙部: 사량부) 소속의 심맥부지(心麥夫智) 급척간(及尺干: 급찬)이 감문성군주(甘文城軍主)였다고 전한다. 한편 본서 권34 잡지제3 지리1 양주조에 문무왕 5, 인덕(麟德) 2(665)에 상주·하주의 땅을 분할하여 삽량주(歃良州: 경남 양산)를 설치하였다.”라고 전한다. 두 기록에 의거하여 상주(上州)는 진흥왕 22(561) 이전에 설치되어 문무왕 5(665)까지 존속하였다고 볼 수 있다.
    4방군주체제(四方軍主體制)가 갖추어진 이후 군주는 왕경인으로 구성된 정군단(停軍團)의 사령관이자, ()의 행정을 총괄하던 장관을 역할을 수행하였으므로, 정군단이 주둔한 지역을 주치(州治)로 이해할 수 있다(주보돈, ~; 전덕재). 이를 따른다면, 561년 상주의 영역 안에 감문군주(甘文軍主)가 존재하였으므로, 당시 상주의 주치이자 군주가 사령관인 감문정(甘文停)이라는 정군단이 주둔한 곳이 바로 감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진흥왕 18(557)에 사벌주를 폐하고 감문주를 설치하였다고 전하는 사실은 상주(上州)의 주치를 사벌에서 감문으로 옮긴 사실과 이때에 군주가 사령관인 정군단의 주둔지도 사벌에서 감문으로 옮긴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진평왕 26(614) 이전에 상주의 주치를 감문에서 사벌로 옮겼다가 다시 614년에 일선으로 옮겼을 것이다. 문무왕 5년 이후 상주(上州)를 폐하고 이전의 상주 지역을 망라하는 주()를 일선주(一善州)라고 불렀음이 확인되며, 신문왕 73월에 일선주를 폐하고 사벌주를 설치하였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서 신라인이 사벌주라는 주명(州名)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신문왕 7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朱甫暾, 1998, 新羅 地方統治體制整備過程村落, 신서원
    전덕재, 2001, 신라 중고기 의 성격 변화와 軍主, 역사와 현실40
  3. 군주(軍主) : 군주는 시기에 따라 그 성격이 변하였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서 권제4 신라본기제4 지증마립간 6(505) 2월조 참조.
  4. 대아찬(大阿飡) 이등(伊登)을 사벌주(沙伐州) 군주(軍主)로 삼았다 : 본서 권제40 잡지제9 직관하() 무관조에는 진흥왕 13(552)에 상주정(上州停)을 설치하였다고 전한다. 종래에 상주정과 더불어 상주(上州)를 동시에 설치하였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신라가 지방 파견 군단인 정과 주를 밀접하게 결합하여 운용하였다고 이해한 다음, 이 기록은 사벌지역에 정군단(사벌정)을 설치하고, 이등을 사벌정의 군주로 임명한 사실을 반영한 것일 뿐이고, 상주 또는 사벌주의 설치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朱甫暾, 104~110).
    한편 법흥왕 11(524)에 건립된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 鳳坪里 新羅碑)()’에 관한 언급이 전혀 보이지 않은 사실에 근거하여 530년대에 신라가 상주(上州)와 하주(下州)를 설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는데(전덕재), 이에 따른다면, 법흥왕 12(525)에 대아찬 이등의 정확한 직함은 사벌군주(沙伐軍主)’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朱甫暾, 1998, 新羅 地方統治體制整備過程村落, 신서원
    전덕재, 2000, 6세기 초반 신라 6부의 성격과 지배구조, 韓國古代史硏究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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