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AD 134~154) 3년 : 기원후 136년
▶ 관리를 임명하다 : 136년 01월(음)
- 三年, 春正月, 拜雄宣爲伊湌, 兼知内外兵馬事. 近宗爲一吉湌.
- 3년(136) 봄 정월에 벼슬을 내려 웅선(雄宣)[1]을 이찬(伊飡)[2]으로 삼고, 겸하여 내외의 병마사(兵馬事)를 관장하게 하였다. 근종(近宗)[3]을 일길찬(一吉飡)[4]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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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웅선(雄宣)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이 기사 외에 일성이사금 9년(142) 7월조에 말갈 정벌 논의에 반대하여 중지시킨 것으로 나오며, 일성이사금 18년(151) 2월조에는 사망 기사가 전한다.
- 이찬(伊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2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근종(近宗)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 이 기사 외에 본서 권11 신라본기11 경문왕 14년(874) 5월조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붙잡혀 처형된 ‘이찬 근종(近宗)’이 보이는데, 이름만 같을 뿐 여기서의 근종과는 별개의 인물이다.
- 일길찬(一吉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7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