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AD 134~154) 18년 : 기원후 151년
▶ 대선을 이찬으로 삼다 : 151년 02월(음)
- 十八年, 春二月, 伊湌雄宣卒, 以大宣爲伊湌, 兼知内外兵馬事.
- 18년(151) 봄 2월에 이찬(伊飡)[1] 웅선(雄宣)[2]이 죽으니, 대선(大宣)[3]을 이찬(伊飡)으로 삼고 겸하여 내외 병마사(兵馬事)를 맡게 하였다.
▶ 우박이 떨어지다 : 151년 03월(음)
- 三月, 雨雹.
- 〔18년(151)〕 3월에 우박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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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이찬(伊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2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웅선(雄宣)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앞서 일성이사금 3년 정월에 이찬에 임명되어 내외 병마사를 맡았고, 일성이사금 9년 7월에는 말갈 정벌 논의에 반대하여 중지시킨 것으로 나온 바 있다.
- 대선(大宣)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여기 외에는 따로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