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AD 479~500) 18년 : 기원후 496년
▶ 가야국이 흰 꿩을 보내다 : 496년 02월(음)
- 十八年, 春二月, 加耶國送白雉, 尾長五尺.
- 18년(496) 봄 2월에 가야국(加耶國)이 흰 꿩을 보냈는데, 꼬리의 길이가 5척(尺)이었다.
▶ 궁실을 다시 수리하다 : 496년 03월(음)
- 三月, 重修宫室.
- 〔18년(496)〕 3월에 궁실(宮室)을 다시 수리하였다.
▶ 큰비가 내려 알천이 넘치다 : 496년 05월(음)
- 夏五月, 大雨, 閼川水漲, 漂沒二百餘家.
- 〔18년(496)〕 여름 5월에 큰비가 내려 알천(閼川)[1]의 물이 넘쳐 2백여 가(家)가 떠내려가거나 물에 잠겼다.
▶ 고구려가 우산성을 공격하자 장군 실죽이 물리치다 : 496년 07월(음)
- 秋七月, 髙句麗來攻牛山城. 將軍實竹出撃泥河上, 破之.
- 〔18년(496)〕 가을 7월에 고구려가 〔쳐들어〕 와 우산성(牛山城)[2]을 공격하였다. 장군(將軍) 실죽(實竹)[3]이 출격해 이하(泥河)[4] 가에서 그들을 깨뜨렸다.[5]
▶ 남쪽 교외에서 농사짓는 것을 보다 : 496년 08월(음)
- 八月, 幸南郊觀稼.
- 〔18년(496)〕 8월에 남쪽 교외에 행차하여 농사짓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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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알천(閼川) : 본서 권1 신라본기1 남해차차웅 11년(14)조의 주석 참조.
- 우산성(牛山城) : 위치 미상. 우산성은 신라와 고구려의 교전지(본서 권3 신라본기3 소지이사금 18년(496)조, 19년(497)조; 권19 고구려본기7 문자왕 5년(496)조, 6년(497)조)로뿐만 아니라 백제와 고구려의 교전지로도 나온다(본서 권19 고구려본기7 안원왕 10년(540)조; 권26 백제본기4 성왕 18년(540)조). 같은 자료에 나오는 동일한 지명은 같은 곳으로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양자를 다른 곳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전자는 기존에 동해안 방면으로 인식되었던 이하(泥河) 가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후자는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본서 권37, 잡지6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서도 우산성을 두 번 기재했으며, 이에 따라 양자를 다른 성으로 보기도 하였다(장창은, 149~150쪽). 그렇지만 최근의 여러 견해와 같이 이하를 남한강 상류로 볼 수 있다면(본서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14년(125) 정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 우산성을 남한강 상류의 초입에 있으면서 삼국의 접경 지역인 충주 일대에 비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津田左右吉, 57~59쪽; 박성현, 206~214쪽).〈참고문헌〉津田左右吉, 1913, 「好太王征服地域考」, 『朝鮮歷史地理』 一: 1964, 『滿鮮歷史地理硏究 1 -朝鮮歷史地理-』, 岩波書店장창은, 2008,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박성현, 2010, 「6세기 초 고구려·신라의 화약과 정계」, 『역사와 현실』 76
- 실죽(實竹) : 신라 소지마립간대(479~500)의 장군. 소지왕 8년(486) 장군에 기용된 후 고구려와의 전투를 주도하였다. 소지왕 16년(494)에는 살수(薩水)에서 고구려군에 고전했지만, 같은 왕 18년(496)에 벌어진 우산성(牛山城) 전투에서는 이하(泥河)에서 맞선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 이하(泥河) : 현재의 남한강 상류 혹은 강릉 일대에서 동해로 들어가는 하천.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14년(125) 7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
- 고구려가 … 깨뜨렸다 : 본서 권19 고구려본기7 문자명왕 5년(496) 7월조에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