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479~500) 1년 : 기원후 479년
▶ 소지마립간이 즉위하다 : 479년 02월(음)
- 炤知 一云毗處.麻立干立. 慈悲王長子. 母金氏, 舒弗邯未斯欣之女, 妃善兮夫人, 乃宿伊伐湌女也. 炤知㓜有孝行, 謙恭自守, 人咸服之.
- 소지(炤知)[비처(毗處)라고도 한다.]마립간(麻立干)[1]이 즉위하였다. 자비왕(慈悲王)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서 서불한(舒弗邯)[2] 미사흔(未斯欣)의 딸이고,[3] 왕비는 선혜부인(善兮夫人)으로 이벌찬(伊伐湌) 내숙(乃宿)의 딸이다.[4] 겸손하고 공손하였으며 스스로 말과 행실을 잘 지켰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따랐다.
▶ 죄수들을 사면하고 관작을 올려주다 : 479년 (음)
- 元年, 大赦, 賜百官爵一級.
- 원년(479)에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고 모든 관리들에게 관작을 한 등급씩 올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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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 신라 제21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79~500년. 소지는 비처(毗處)라고도 하였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제1)에는 자비왕의 제3자라고 되어 있지만, 본서에 따라 자비왕의 장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머니는 미사흔의 딸이다. 소지왕대는 이른바 고구려의 남진 정책 시기로 백제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자비왕대에 이어 추가적으로 축성하였다.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설치하였으며, 우역(郵驛)을 처음 두고 관도(官道)를 수리하였다. 월성을 수리하고 명활성으로부터 돌아왔으며, 서울에 시장을 개설하여 사방의 재화를 유통시켰다.
- 서불한(舒弗邯) :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일 높은 이벌찬(伊伐湌)의 이칭이다. 이벌찬에 대해서는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이벌찬에 대한 주석 참조.
- 어머니는 … 딸이고 : 미사흔(未斯欣)에 대해서는 본서 권3 신라본기3 실성이사금 원년(402) 2월조의 주석 참조. 눌지마립간 17년(433) 5월 미사흔이 죽자 서불한(舒弗邯)으로 추증하였고, 자비마립간 4년(461) 왕이 미사흔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 왕비는 … 딸이다 : 본서에는 소지왕비가 이벌찬(伊伐湌) 내숙(乃宿)의 딸 선혜부인(善兮夫人)이라고 되어 있지만, (『삼국유사』 권제1 왕력제1)에는 기보갈문왕(期寶葛文王)의 딸이라고 되어 있다. 기보(期寶)는 사보(斯寶)의 오기로 보아 지증왕의 아버지인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숙(乃宿)은 소지마립간 8년(486) 2월에 이벌찬이 되었으며, 본서 거칠부(居柒夫)전에 나오는 거칠부의 조부 각간 잉숙(仍宿)과 동일인으로 추정되고 있다(李基東, 78쪽). 거칠부는 나물왕의 5세손이므로 조부인 그는 나물왕의 3세손, 즉 손자로서 자비왕과 같은 항렬이 된다. 본서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면, 소지왕에게는 적어도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선비(先妃)는 습보갈문왕의 딸이며, 후비(後妃)는 내숙의 딸 선혜부인이었을 것이다(윤진석, 89~90쪽).〈참고문헌〉李基東, 1984, 『新羅 骨品制社會와 花郞徒』, 一潮閣윤진석, 2009, 「신라 至都盧葛文王의 ‘攝政’」, 『韓國古代史硏究』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