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AD 458~479) 8년 : 기원후 465년
▶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다 : 465년 04월(음)
- 八年, 夏四月, 大水, 山崩一十七所.
- 8년(465) 여름 4월에 홍수가 나서 산 17곳이 무너졌다.
▶ 사벌군에 누리의 피해가 나다 : 465년 05월(음)
- 五月, 沙伐郡蝗.
- 〔8년(465)〕 5월에 사벌군(沙伐郡)[1]에 누리[蝗]의 피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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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사벌군(沙伐郡) : 현재의 경상북도 상주시 병성동, 사벌면. 본서 권34 잡지3 지리1에 상주(尙州)는 첨해왕(沾解王) 때 사벌국(沙伐國)을 취하여 주(州)로 삼았으며, 경덕왕 16년(757) 이름을 상주로 고쳤다고 되어 있다. 상주는 고려 이후에도 계속 상주라고 하였는데, 그 중심지는 현재의 상주시내에 해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8 상주목 고적조에 사벌국고성(沙伐國古城) 병풍산(屛風山) 아래에 있다고 되어 있다. 현재의 상주시 병성동, 사벌면 일대에 해당한다. 여기에 위치한 병풍산성, 병성동고분군, 이부곡토성 등은 삼국 시대 상주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즉 사벌국의 존재를 직접 말해주지는 않지만 대체로 삼국 시대까지 상주의 중심지가 현 상주시내가 아니라 병성동, 사벌면 일대였음을 알 수 있다. 본서 지리지에는 신문왕 7년(687) 주치를 사벌로 확정하고 성을 쌓았다고 되어 있는데 이 성은 상주시내 인근의 자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朴泰祐, 1987, 「統一新羅時代의 地方都市에 對한 硏究」, 『百濟硏究』 18, 68~69쪽). 즉 통일기에 들어 9주의 주치를 확정하면서 사벌의 중심지가 병성동, 사벌면 일대에서 현 상주시내로 이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벌을 군(郡)이라고 한 것은 당시 군제(郡制)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