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 AD 417~458) 36년 : 기원후 452년
▶ 대산군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바치다 : 452년 07월(음)
- 三十六年, 秋七月, 大山郡進嘉禾.
- 36년(452) 가을 7월에 대산군(大山郡)[1]에서 상서로운 벼이삭[嘉禾]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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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대산군(大山郡) : 위치 미상. 본서 권36 잡지5 지리3 전주(全州)조에 대산군(大山郡)은 본래 백제(百濟) 대시산군(大尸山郡)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고, 고려 때는 태산군(泰山郡)이라고 되어 있다. 태산군은 조선 태종 때 인의현(仁義縣)과 합쳐 태인현(泰仁縣)이 되었고 그 중심지는 거산역(居山驛)에 두어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태인현 고적조에 고태산(古泰山)이 현의 동쪽 20리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에 해당한다. 이 기사의 대산군을 경덕왕 이후의 지명인 대산군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시산군은 당시 백제에 속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는 주(州)-군(郡)-현(縣)의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郡)이라는 표현도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