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 AD 402~417) 14년 : 기원후 415년
▶ 혈성의 들판에서 사열하고 금성 남문에서 활쏘기를 구경하다 : 415년 07월(음)
- 十四年, 秋七月, 大閱於穴城原, 又御金城南門觀射.
- 14년(415) 가을 7월에 혈성(穴城)[1]의 들판에서 크게 사열(査閱)하였고, 또 금성(金城)[2] 남문으로 가서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 왜인과 풍도에서 싸워 이기다 : 415년 08월(음)
- 八月, 與倭人戰於風㠀, 克之.
- 〔14년(415)〕 8월에 왜인(倭人)과 풍도(風島)[3]에서 싸워 이겼다.
==========
[각주]
- 혈성(穴城) : 위치 미상. 혈성은 본서 신라본기에 실성이사금 14년(415) 7월조, 헌강왕 5년(879), 경순왕 5년(931) 등 세 차례 나오며,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도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렵지만 경순왕이 경주에 온 고려 왕건을 혈성(穴城)까지 전송했다는 점에서 경주 서쪽이나 북쪽 근교일 것이다. 북쪽 근교일 것이나,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본서 권32 잡지1 제사에 나오는, 대사(大祀)를 지내는 3산(三山) 중 하나인 혈례(穴禮)를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혈례산의 위치 역시 미상이지만 이를 경주시 북부에 있는 현재의 어래산(魚來山)에 비정하는 견해(金侖禹, 1987, 「新羅時代 大城郡에 관한 考察 -新羅王都 周圍의 所在郡縣에 대한 一考察-」, 『新羅文化』 3·4, 60~61쪽)가 참고된다.
- 금성(金城) : 신라의 경성(京城) 혹은 초기의 궁성(宮城).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혁거세거서간 21년(B.C.37)조 기사의 주석 참조.
- 풍도(風島) : 위치 미상. 풍도는 본서 신라본기에 흘해이사금 37년(346), 실성이사금 14년(415) 8월조 두 차례 나오며,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도 수록되어 있다. 왜(倭)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