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 AD 402~417) 12년 : 기원후 413년
▶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나다 : 413년 08월(음)
- 十二年, 秋八月, 雲起狼山, 望之如樓閣, 香氣郁然, 久而不歇. 王謂, “是必仙靈降遊, 應是福地.” 從此後, 禁人斬伐樹木.
- 12년(413) 가을 8월에 낭산(狼山)[1]에서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니 누각과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노는 것이니 마땅히 이곳은 복 받은 땅이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였다.
▶ 평양주에 큰 다리를 만들다 : 413년 08월(음)
- 新成平壤州大橋.
- 〔12년(413)〕 평양주(平壤州)[2]에 큰 다리를 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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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낭산(狼山) : 본서 신라본기 실성이사금 12년(413) 8월조, 소지마립간 8년(486) 8월조 기사에 나오며, 선덕여왕 및 신문왕의 장지(葬地)와 관련해서 나온다. 즉 선덕여왕을 낭산에, 신문왕을 낭산 동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또 열전에서 백결선생이 낭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2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조)에는 낭산 남쪽에 선덕여왕의 능을 조성하였고, 그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한 내력이 소개되어 있다. (같은 책 권제2 기이제2 문무왕법민(文武王法敏)조)에서는 남산 남쪽에 (사)천왕사를 지었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산천조에는 낭산이 부(府)의 동쪽 9리에 있으며 경주의 진산(鎭山)이라고 되어 있다.
- 평양주(平壤州) : 위치 미상. 평양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평양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당시 평양은 신라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기사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신라가 견문한 사실을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1 제18대실성왕(第十八代實聖王)조)에도 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일연은 주석을 붙여 “남평양(南平壤)으로 여겨지며 당시의 양주(楊州)”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평양이 아니라 남평양, 즉 현재의 서울(광진구)이라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