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나물이사금(奈勿尼師今, AD 356~402) 40년 : 기원후 395년
▶ 말갈이 침입하자 이를 쳐부수다 : 395년 08월(음)
- 四十年, 秋八月, 靺鞨侵北邊. 出師大敗之於悉直之原.
- 40년(395) 가을 8월에 말갈(靺鞨)[1]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군사를 내어 그들을 실직(悉直)[2]의 들판에서 크게 쳐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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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말갈(靺鞨) : 일반적으로 6~10세기 만주 동부 지역에 거주한 퉁구스계 종족에 대한 지칭이다. 중국 역사서에 ‘말갈(靺鞨)’이란 종족명은 『북제서(北齊書)』 무성제기(武成帝紀) 청하(河淸) 2년(563)조에 처음 나온다. 본서 본기에는 말갈이 초기부터 신라 말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6세기 이후의 말갈은 중국 역사서에 보이는 것과 동일한 존재로 볼 수 있지만, 초기 기사의 말갈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14년(125) 정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
- 실직(悉直) : 현재의 삼척(三陟). 본서 권35, 잡지4 지리2에 삼척군(三陟郡)은 본래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파사왕(婆娑王) 때 항복해왔으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고 고려 때까지 그대로 썼다고 되어 있다. 이 지명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지는 죽서루(竹西樓) 동쪽의 성내동 일대였다. 그 북쪽 1리에는 진산(鎭山)인 갈야산(葛夜山)이 있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 권44, 삼척도호부 산천), 여기에는 신라 고분군인 갈야산고분군이 위치한다(李漢祥, 2003, 「동해안지역 5~6세기대 신라분묘 확산양상」, 『嶺南考古學』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