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나물이사금(奈勿尼師今, AD 356~402) 37년 : 기원후 392년
▶ 실성을 고구려로 보내 볼모로 삼다 : 392년 01월(음)
- 三十七年, 春正月, 髙句麗遣使. 王以髙句麗強盛, 送伊湌大西知子實聖爲質.
- 37년(392) 봄 정월에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냈다. 왕은 고구려가 강성하였기 때문에 이찬(伊湌) 대서지(大西知)[1]의 아들 실성(實聖)[2]을 보내 볼모로 삼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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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대서지(大西知) : 본서 권3 신라본기1 실성이사금 즉위년(402) 2월조의 주석 참조.
- 실성(實聖) : 본서 권3 신라본기1 실성이사금 즉위년(402) 2월조의 주석 참조.
- 고구려에서 … 볼모로 삼았다 : 본서 권18 고구려본기6 고국양왕 9년(391)조에 같은 내용이 전해져 신라본기와는 1년의 차이가 난다.신라에서는 나물왕이 석씨계와 연결된 실성을 견제하기 위해 볼모 파견을 활용한 것으로 이해되며(金哲埈, 1952: 1990, 127쪽),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대대적인 백제 정벌을 앞두고 신라를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 강하게 종속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장창은, 87쪽)가 있다.〈참고문헌〉金哲埈, 1952, 「新羅 上代社會의 Dual Organization」, 『歷史學報』 1·2: 1990, 『韓國古代社會硏究』, 서울大學校 出版部장창은, 2008, 「김씨왕실의 개창과 고구려의 내정간섭」,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