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AD 247~261) 9년 : 기원후 255년
▶ 백제와 괴곡에서 맞서 싸우다 익종이 전사하다 : 255년 09월(음)
- 九年, 秋九月, 百濟來侵. 一伐湌翊宗逆戰於槐[정덕본에서는 판독이 어렵다.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槐로 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도 槐를 따랐다.]谷西, 爲賊所殺.
- 9년(255) 가을 9월에 백제가 침략해 왔다.[1] 일벌찬(一伐湌)[2] 익종(翊宗)[3]이 괴곡(槐谷)[4] 서쪽에서 맞서 싸우다가 적군에 살해되었다.
▶ 백제의 봉산성 공격을 막아내다 : 255년 10월(음)
- 冬十月, 百濟攻烽山城, 不下.
- 〔9년(255)〕 겨울 10월에 백제가 봉산성(烽山城)[5]을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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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백제가 … 왔다 : 다음에 나오는 10월 기사와 연결되는 전쟁 기사이다. 이 9월과 10월 전쟁 기사는 본서 권24 백제본기2 고이왕 22년(255) 9월 및 10월조에도 있다.
- 일벌찬(一伐湌) : 각간은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1등 이벌찬(伊伐湌)의 이칭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이벌찬에 대한 주석 참조.
- 익종(翊宗) : 이 기사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10년(121) 정월조에서 이찬에 임명되고 그 다음해 4월 왜의 침략시 왕의 명을 받아 민심의 동요를 진정시켰던 익종(翌宗)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 두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보기에는 두 기사 간의 시간차가 매우 큰 문제가 있는데, 이를 동시에 존재했던 박씨 왕통과 석씨 왕통을 후대에 순차적으로 정리하면서 나타난 오류로 파악하기도 한다(선석열, 2001, 『신라국가성립과정연구』, 혜안).
- 괴곡(槐谷) : 이 기사 외에도 미추이사금 17년(278) 10월조와 미추이사금 22년(283) 10월조에도 백제의 침략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지명이지만,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 기재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미 고려시대에도 그 위치를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본서 권35 지리2 한주(漢州)의 영군인 괴양군(槐壤郡)의 괴양과 괴곡을 동일한 지명으로 보고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일대로 추정하기도 한다(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75쪽).
- 봉산성(烽山城) : 위치 미상의 성이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나해이사금 29년(224) 7월조의 봉산에 대한 주석 참조.
- 백제가 … 못하였다 : 앞의 9월 기사와 연결된 내용이다. 이 9월과 10월 전쟁 기사는 본서 권24 백제본기2 고이왕 22년(255) 9월 및 10월조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