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AD 247~261) 2년 : 기원후 248년
▶ 장훤을 서불한에 임명하다 : 248년 01월(음)
- 二年, 春正月, 以伊湌長萱爲舒弗邯, 以叅國政.
- 2년(248) 봄 정월에 이찬(伊湌)[1] 장훤(長萱)[2]을 서불한(舒弗邯)[3]에 임명하여 국정에 참여하도록 하였다.[4]
▶ 고구려와 화친을 맺다 : 248년 02월(음)
- 二月, 遣使髙句麗結和.
- 2월에 사신을 고구려에 보내 화친을 맺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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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이찬(伊湌) : 신라 경위(京位) 17관등(官等) 중 제2등에 해당하는 것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이척찬에 대한 주석 참조.
- 장훤(長萱) : 이 기사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 서불한(舒弗邯) :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일 높은 이벌찬(伊伐湌)의 이칭이다. 이벌찬에 대해서는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이벌찬에 대한 주석 참조.
- 국정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 신라 초기에 제1, 2관등인 서불한(舒弗邯)·이벌찬(伊伐湌), 이찬(伊湌)의 임명 기사에 그들에게 군사와 국정운영을 맡겼다는 표현이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본 기사에서는 군사에 대한 업무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이 당시 이들이 책임을 맡았던 군사와 국정이 엄격히 구분되는 업무 분야는 아니었다고 여겨진다. 이찬 등이 관직이 아니므로, 군사와 국정이 이찬 등의 고정적인 직무라 하기는 힘들고, 아직 관직과 관등이 분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 직위의 역할을 서술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사신을 … 맺었다 : 본서 권17 고구려본기5 동천왕 22년(248) 2월조에 같은 내용이 있다. 『삼국유사』 권제11 왕력제1에 나오는 “고구려와 교류하기 시작하였다[始與高麗通聘]”는 이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