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대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 AD 196~230) 17년 : 기원후 212년
▶ 가야가 왕자를 볼모로 보내오다 : 212년 03월(음)
- 十七年, 春三月, 加耶送[정덕본에는 辶+差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送으로 되어 있다. 문맥상 送이 옳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는 送을 따랐다.]王子爲質.
- 17년(212) 봄 3월에 가야(加耶)[1]가 왕자를 볼모로 보내왔다.
▶ 홍수가 나다 : 212년 05월(음)
- 夏五月, 大雨, 漂毀民屋.
- 〔17년(212)〕 여름 5월에 많은 비가 내려 백성들의 집이 떠내려가고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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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가야(加耶) : 가야는 원래 변진 지역 소국들의 맹주격인 금관가야의 이름이었고, 이후 변진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후기 가야의 맹주국인 대가야(大加耶)의 국명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金泰植, 1993, 『加耶聯盟史』, 一潮閣, 16~20쪽).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이 기사의 가야는 여러 소국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기보다, 앞서 나해이사금 14년(209) 7월에 포상팔국의 침입으로 신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도움을 받았던 개별 소국으로서의 가라(加羅)일 가능성이 높다. 또 이 시점에서 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었던 금관가야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