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 BC 57 ~ AD 4) 21년 : 기원전 37년
금성을 축조하다 : 기원전 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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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年, 築京城, 號曰金城.
21년(B.C. 37)에 수도에 성을 쌓고 금성(金城)[1]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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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조가 즉위하다 : 기원전 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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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歳, 髙句麗始祖東明立.
이 해(B.C. 37)에 고구려의 시조 동명(東明)[2]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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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금성(金城) : 경주 지역에 있었던 신라 왕성으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금성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우리 측 사서와 「숭복사비문(崇福寺碑文)」을 비롯한 통일신라 시기의 금석문 자료에 그 이름이 보이고, 『한원(翰苑)』,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의 중국 사서에도 관련 기사가 나온다.먼저 중국 사서부터 살펴보면, 『한원』 번이부(蕃夷部) 신라조의 주석에 인용된 『괄지지(括地志)』의 기사에서는 “신라의 치소는 ‘금성’이다[新羅治金城]”라고 하여, 금성이 신라의 ‘도성’을 지칭하는 명칭처럼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구당서』 및 『신당서』의 신라전에서는 “왕이 사는 곳은 ‘금성’이며, 둘레가 7~8리이다[王之所居曰金城 周七八里]”라고 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둘레 7~8리’는 1리가 약 540m로 계산되는 당척(唐尺)으로 파악했을 때 대략 3.8~4.3㎞ 정도까지가 될 텐데, 이 정도의 길이라면 왕도 전체의 둘레와는 차이가 있고 현존 경주 월성(月城) 둘레 2.4㎞의 2배 가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록을 중시할 경우, 금성은 신라의 도성 그 자체가 아니라 도성 내에서 왕이 거처하는 특정한 궁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한편 본서 신라본기에는 본 기사에 나오듯이 혁거세 21년(B.C. 37)에 수도에 성을 쌓고[築京城] 금성이라 불렀다고 하고, 동 26년(B.C. 32)에도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고 되어 있다. 이후 신라본기에서 금성은 소지마립간 22년(500)까지 모두 26차례 등장하며, 그 뒤로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신라본기의 용례로 보면, 도성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도성 내에서 왕이 거처하는 궁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본서 지리지에는 처음 혁거세 21년에 궁성을 쌓아 금성이라고 불렀는데, 파사왕 22년(101)에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이라고 불렀다고 하여, 금성은 곧 월성과는 별도로 그 서북쪽에 존재한 궁성(宮城)으로 파악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조선 시대에는 금성을 월성 축조 이전부터 조성되어 있던 구체적인 궁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慶州府) 고적조(古跡條)에서는 “금성(金城)은 본부(本府) 동쪽 4리에 있으며 신라 시조 혁거세 때에 쌓은 토성(土城)으로 둘레가 2,407척”이라고 하였다.오늘날 학계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금성을 특정 궁성의 이름이 아니라 신라 왕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고(南勝浩, 2004; 박성현, 2016), 월성의 이칭(異稱)으로 이해하기도 하며(박방룡, 1985), 월성과는 별개의 궁성으로 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세 번째의 견해는 다시 금성의 구체적인 위치를 둘러싸고 여러 견해로 나뉘는데, 지금의 경주 시내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지로 보는 견해(金秉模, 1984), 읍성지와 그 동쪽으로 전랑지(殿廊址) 서편에 걸치는 알천 이남 지역으로 보는 견해(姜鍾元, 1992), 읍성지 부근으로 알천 및 형산강과 인접한 지역으로 보는 견해(전덕재, 2009), 현재의 알천 북쪽에 위치한 황성공원 일대로 보는 견해(金鎬詳, 1999; 황보은숙, 2009), 월성의 남쪽이자 남산 북쪽 기슭에 있는 인왕동 일대로 보는 견해(정연식, 2016) 등이 제기되었다.〈참고문헌〉金秉模, 1984, 「都市計劃」, 『歷史都市 慶州』, 悅話堂姜鍾元, 1992, 「新羅 王京의 形成過程」, 『百濟硏究』 23金鎬詳, 1999, 「新羅王京의 金城硏究」, 『慶州史學』 18南勝浩, 2004, 「新羅 金城의 意味와 範圍」, 『大丘史學』 74전덕재, 2009, 『신라 왕경의 역사』, 새문사황보은숙, 2009, 「금성의 위치 비정」, 『新羅文化』 34박방룡, 2013, 『신라 도성』, 학연문화사박성현, 2016, 「신라 왕경 관련 문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문헌으로 보는 신라의 왕경과 월성』,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정연식, 2016, 「신라 금성(金城)의 위치 고증」, 『韓國史硏究』 173박경택, 2017, 「신라 금성 위치 비정에 대한 諸論과 향후 과제」, 『동아시아고대학』 45
- 동명(東明) :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朱蒙)을 가리킨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3 고구려본기1 시조 동명성왕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