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8대 국왕] 소제 유불릉(昭帝 劉弗陵, BC 87~74)
- 재위 : 기원전 87년 3월 30일 ~ 기원전 74년 6월 5일
- 출생일 : 기원전 94년
- 사망일 : 기원전 74년 6월 5일
[소제의 연호]
- 시원(始元, 기원전 86년 ~ 기원전 80년)
- 원봉(元鳳, 기원전 80년 ~ 기원전 75년)
- 원평(元平, 기원전 74년)
한 효소황제 유불릉(漢 孝昭皇帝 劉弗陵)은 무제와 구익부인 소생이다.
한무제의 막내아들로 후궁 구익부인 조씨(鉤弋夫人 趙氏) 소생이다. 하지만 무제의 장남 여태자 유거가 무고의 화로 죽고, 다른 아들인 창읍왕 유박이 잇따라 죽자 무제는 기원전 87년 2월 12일 조서를 내려 어린 유불릉을 태자로 삼고 곽광을 대사마ㆍ대장군ㆍ영상서사에, 김일제를 거기장군에, 상관걸(上官傑)을 좌장군으로 삼아 어사대부 상홍양과 승상 전천추와 함께 어린 유불릉을 보필하도록 지시했고, 이틀 만인 14일에 한무제는 사망했고 결국 유불릉은 8살에 황제가 되었다. 구익부인이 무제한테 살해됐기에 황제가 된 후 양육은 누나 개장공주(蓋長公主)가 맡았다.
[기원전 87년] 후원 2년
2월 2일, 아버지 무제가 병이 들자 태자로 책봉되었고, 다음날 무제가 죽자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즉위전 여태자가 역모로 죽임당하고 장성한 아들 창읍애왕마저 병으로 죽자 장성한 다른 아들 연날왕 유단, 광릉여왕 유서가 있음에도 구익부인 조씨 소생의 어린 아들 불릉을 태자로 내정하였다. 한무제는 어린 아들에게 젊은 모(태후)가 있으면 외척의 발호와 폐단이 있을 것이라 하여 구익부인 조씨를 자결하게 하고 그의 인척들을 축출하였다. 그 뒤 곽광ㆍ김일제ㆍ상홍양ㆍ상관걸ㆍ전천추를 아들의 후견인으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누나 악읍공주가 장공주에 봉해져 금중(禁中)에서 양육을 맡았다. 7월에는 죽은 어머니 구익부인을 황태후로 추존하고 그 매장지에 운릉(雲陵)을 조성했다.
7월, 근친상간과 무고(巫蠱) 혐의로 제북왕 유관을 소환해 강제로 자살하게 하고, 제북국을 폐지해 태산군에 편입했다. 이해 역종근ㆍ상구성ㆍ유서광 등도 무고에 연루돼 주살됐다.
[기원전 86년] 시원 원년
서형 연왕 유단ㆍ광릉왕 유서ㆍ누나 악읍장공주에게 1만 3천호씩 증봉했다. 그러나 연왕은 자신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전히 불만을 품었고, 종실 중 제효왕의 손자 유택(劉澤)과 중산애왕의 아들 유장(劉長) 등과 모의해 반역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8월 유택이 청주자사 준불의를 죽이려고 모의했다가 병경후(缾敬侯) 유성(劉成)을 통해 이를 알아챈 준불의에게 제압되었다. 이에 유택과 그에 관계된 사람들을 모두 주살하고 준불의를 경조윤으로 승진시켰으나, 연왕은 불문에 부쳤다.
이해 9월에는 섭정단 중 김일제가 죽었다.
섭정단은 곧 내분에 빠지게 된다. 일단 김일제는 다음해인 기원전 86년 9월 2일 곧바로 죽었고, 전천추는 무능한 데다 정쟁에 안 끼는 보신주의자라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곽광과 상관걸은 처음에는 상관걸의 아들 상관안을 곽광의 딸과 결혼시킬 정도로 친했다. 그러나 상관걸이 두 사람 사이에 낳은 딸을 소제의 황후로 집어넣기 위해 곽광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곽광은 외손녀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결국 상관걸의 손녀가 황후가 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결국 두 사람이 원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기원전 83년] 시원 4년
상관걸의 손녀를 황후로 세웠다.
[기원전 80년] 원봉 원년
9월, 악읍장공주와 연왕 단과 상관걸 부자와 상홍양이 모반을 일으켜 모두 주살되었다.
이후 곽광은 막강한 권세를 누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재능과 학식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공평무사하고 항상 몸을 삼가는 자세를 취하였으므로 소제의 치세동안 나라는 안정되었다. 그러나 그의 막강한 권세는 뒷날 곽씨 일가의 전횡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기원전 82년] 시원 5년
담이(儋耳)ㆍ진번 두 군을 폐지했다.
[기원전 81년] 시원 6년
강족을 방비하기 위해 천수ㆍ농서ㆍ장액군에서 두 현씩 내어 금성군을 신설했다.
[기원전 76년] 원봉 5년
상군(象郡)을 폐지하고 그 영역은 장가ㆍ울림 두 군에 편입했다.
[기원전 74년]
기원전 74년 소제는 21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의 뒤는 소제의 조카이자 유박의 아들인 창읍왕 유하가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권을 장악하려는 행각으로 인해 얼마되지 않아 곽광에게 폐위되었다. 이후 여태자의 손자 유순이 뒤를 이어 황제가 되니 그가 한나라 선제(宣帝)다.
[가족관계]
- 부 : 무제
- 모 : 효소태후(구익부인)
- 황후 : 효소황후 상관씨(孝昭皇后 上官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