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아달라이사금(阿逹羅尼師今, AD 154~184) 19년 : 기원후 172년
▶ 구도와 구수혜를 각각 파진찬과 일길찬에 임명하다 : 172년 01월(음)
- 十九年, 春正月, 以仇道為波珍飡, 仇須兮為一[정덕본에는 누락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一이 삽입되어 있다. 신라 관등명이므로 一이 들어가야 옳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도 一을 추가해 넣었다.]吉飡.
- 19년(172) 봄 정월에 구도(仇道)[1]를 파진찬(波珍湌)[2]에 임명하고, 구수혜(仇須兮)[3]를 일길찬(一吉湌)[4] 임명하였다.
▶ 시조묘에 변고가 있고 수도에 전염병이 돌다 : 172년 02월(음)
- 二月, 有事始祖廟, 京都大疫.
- 〔19년(172)〕 2월에 시조묘(始祖廟)[5]에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었고,[6] 수도[京都]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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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구도(仇道) : 아달라이사금대와 벌휴이사금대에 활동한 생몰년 미상의 인물이다. 김씨로서 최초로 신라왕이 된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부친이다. 이에 그의 성을 김씨로 보기도 하지만, 당시 실제로 성을 사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름의 한자를 ‘俱道’로 쓰기도 한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미추이사금 즉위년(262)조에 가계 계보가 나오는데, 그에 따르면 5대조가 김알지(金閼智), 고조부가 세한(勢漢), 증조부가 아도(阿道), 조부가 수류(首留), 아버지가 욱보(郁甫)이며, 자식으로 미추이사금, 각간 말구(末仇), 옥모부인(玉帽夫人) 김씨(金氏)가 있다. 장인은 이칠갈문왕(伊柒葛文王), 사위는 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이다.이 기사에서 파진찬에 임명되었지만 아달라이사금대에 별다르게 활약한 기록은 없고, 벌휴이사금대에 조문국(召文國) 정벌과 백제와의 전쟁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대체로 그의 활동으로 김씨 집단이 신라 내에서 세력을 가지게 된 것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선석열, 2015, 『신라 왕위계승 원리 연구』, 혜안, 81~82쪽). 벌휴이사금 7년(190)의 전투에서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된 이후 동향은 확인되지 않는다. 미추이사금 2년(263) 2월 아들 미추이사금에 의해 갈문왕에 추봉되었다.
- 파진찬(波珍湌) : 신라 경위(京位) 17관등(官等) 중 제4등에 해당한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파진찬에 대한 주석 참조.
- 구수혜(仇須兮) : 아달라이사금대와 벌휴이사금대에 활동한 생몰년 미상의 인물이다. 이 기사에서 구도와 함께 관등을 수여받으며, 벌휴이사금 2년(185) 2월에 역시 구도와 함께 조문국(召文國) 정벌을 하였다고 한다.
- 일길찬(一吉湌) : 신라 경위(京位) 17관등(官等) 중 제7등에 해당한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일길찬에 대한 주석 참조.
- 시조묘(始祖廟) : 신라에 있었던 사당으로, 국가 제사 중 하나인 시조에 대한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남해차차웅 3년(6) 정월조의 주석 참조.
- 일이 있었고 : 분명하지는 않지만 괴이한 징조가 있었다는 의미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