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AD 134~154) 9년 : 기원후 142년
▶ 말갈 정벌을 논의하다 : 142년 07월(음)
- 九年, 秋七月, 召羣公議征靺鞨. 伊湌雄宣上言不可, 乃止.
- 9년(142) 가을 7월에 여러 신하를 불러 말갈(靺鞨)[1]을 정벌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찬(伊飡)[2] 웅선(雄宣)[3]이 불가하다는 말을 올리니,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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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말갈(靺鞨) : 일반적으로 6~10세기 만주 동부 지역에 거주한 퉁구스계 종족에 대한 지칭이다. 중국 역사서에 ‘말갈(靺鞨)’이란 종족명은 『북제서(北齊書)』 무성제기(武成帝紀) 청하(河淸) 2년(563)조에 처음 나온다. 본서 본기에는 말갈이 초기부터 신라 말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6세기 이후의 말갈은 중국 역사서에 보이는 것과 동일한 존재로 볼 수 있지만, 초기 기사의 말갈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권1 신라본기1 지마이사금 14년(112) 정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
- 이찬(伊飡) : 신라 경위 17관등제의 제2등에 해당하는 관등. 상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주석 참조.
- 웅선(雄宣)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앞서 일성이사금 3년 정월에 이찬에 임명되어 내외 병마사를 맡은 것으로 나온 바 있다. 일성이사금 18년(151) 2월에 사망한 것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