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대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 AD 112~134) 23년 : 기원후 134년
▶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다 : 134년 (음)
- 二十三年, 春夏旱.
- 23년(134)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 지마이사금이 죽다 : 134년 08월(음)
- 秋八月, 王薨. 無子.
- 〔23년(134)〕 가을 8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아들이 없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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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아들이 없었다 : 다음 왕인 일성이사금의 즉위가 지마이사금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명분을 내세운 것인데, 후대의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본 기사에서는 지마이사금의 장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는 『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한편 현재 경주시 배동에는 직경 12m, 높이 3.4m의 원형 봉토분으로 ‘지마왕릉’(사적 221호)이라는 이름의 신라 시기 무덤이 남아 있다. 무덤 양식이 6세기 후반 이후의 것이어서 대체로 학계에서는 실제 지마왕의 무덤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이근직, 2012, 『신라왕릉연구』, 학연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