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AD 57~80) 17년 : 기원후 73년
▶ 왜가 침략해 오다 : 73년 (음)
- 十七[정덕본에는 一로 되어 있고, 《삼국사절요》·주자본·을해목활자본에는 七로 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도 七을 따랐다.]年, 倭人侵木出㠀[정덕본에는 㠀로 되어 있다. 을해목활자본에는 島로 되어 있다. 㠀는 島의 본자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는 島로 표기했다.], 王遣角干羽烏禦之, 不克, 羽烏死之.
- 17년(73)에 왜인(倭人)이 목출도(木出島)[1]를 침략하니, 왕이 각간(角干)[2] 우오(羽烏)[3]를 보내어 막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우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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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목출도(木出島) : 위치는 알 수 없음. 왜의 침략을 받은 곳이므로, 동남해안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각간(角干) : 각간은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일 높은 이벌찬(伊伐湌)의 이칭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 주석 및 지마이사금 즉위조의 주석 참조. 한편 지마이사금 즉위조를 보면, ‘각간(角干)’이 처음 두어진 시기가 파사이사금 대로 나오는바, 이 기사에서의 각간은 기록상 착오이거나 후대 기사가 잘못 소급되어 들어갔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우오(羽烏) : 신라 초기에 활동한 인물로, 이곳 외에는 따로 보이지 않는다. 훗날 왜의 침략을 막다가 사망한 것으로 나오는 서불한(舒弗邯: 각간) ‘우로(于老)’가 있는데, 발음이나 자형에서 유사한 면이 있어 우로의 활동과 관련된 별도의 기사가 소급되어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