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 AD 417~458) 18년 : 기원후 434년
▶ 백제왕이 좋은 말을 보내다 : 434년 02월(음)
- 十八年, 春二月, 百濟王送良馬二匹.
- 18년(434) 봄 2월에 백제왕이 좋은 말 2필을 보냈다.[1]
▶ 백제왕이 흰 매를 보내다 : 434년 09월(음)
- 秋九月, 又送白鷹.
- 〔18년(434)〕 가을 9월에 〔백제왕이〕 또 흰 매를 보냈다.[2]
▶ 황금과 야광구슬을 백제에 보내다 : 434년 10월(음)
- 冬十月, 王以黄金·明珠, 報聘百濟.
- 〔18년(434)〕 겨울 10월에 왕이 황금과 빛이 나는 진주를 백제에 예물로 보내 보답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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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백제왕이 좋은 말 2필을 보냈다 : 본서 권25 백제본기3 비유왕 8년(434) 2월조에 동일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 〔백제왕이〕 또 흰 매를 보냈다 : 본서 권25 백제본기3 비유왕 8년(434) 9월조에 동일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 왕이 … 보답하였다 : 본서 권25 백제본기3 비유왕 8년(434) 10월조에 동일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일반적으로 433년 백제의 화친 요청과 신라의 수용, 434년 양국 사이의 예물 수수를 ‘나제 동맹(羅濟同盟)’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제 동맹은 554년 백제의 신라 관산성 공격 때까지 유지된 것으로 이해된다(金秉柱, 29~31, 37~39쪽). 한편 나제 동맹의 시작을 실제로 군사 행동이 이루어진 455년으로 보거나(鄭雲龍, 101~104쪽), 496년 이후 나제 동맹군의 활동이 보이지 않고 백제의 대신라 견제책이 보이기 때문에 동맹기의 하한을 496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朴眞淑, 98~100쪽). 한편 동맹의 성립 자체를 부정한 채 ‘우호 관계(433년)에서 군사 협력 단계(454년 이후)로의 모색’으로 이해하기도 한다(鄭載潤, 69~73쪽). 나제 동맹의 배경으로는 427년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를 비롯한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밖에 장수왕이 『일본서기(日本書紀)』 응신기(應神紀), 인덕기(仁德紀)의 기사에 나타난 것과 같이 왜에 접근해 중국 남조와의 통교를 매개하고 아울러 관계를 개선하려 했기 때문에, 이것이 백제를 자극하여 신라와 동맹을 맺게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姜鍾薰).〈참고문헌〉金秉柱, 1984, 「羅濟同盟에 관한 硏究」, 『韓國史硏究』 46鄭雲龍, 1996, 「羅濟同盟期 新羅와 百濟 關係」, 『白山學報』 46朴眞淑, 2000, 「百濟 東城王代 對外政策의 變化」, 『百濟硏究』 32鄭載潤, 2001, 「熊津時代 百濟와 新羅의 關係에 대한 考察 -羅濟同盟에 대한 비판적 검토-」, 『湖西考古學』 4·5合輯姜鍾薰, 2011, 「羅濟同盟의 結成 背景과 高句麗의 對外關係」, 『大丘史學』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