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AD 298~310) 3년 : 기원후 300년
▶ 왜와 사신을 교환하다 : 300년 01월(음)
- 三年, 春正月, 與倭國交聘.
- 3년(300) 봄 정월에 왜국(倭國)과 예물을 보내는 사신을 교환하였다.[1]
▶ 비열홀로 가 백성을 보살피다 : 300년 02월(음)
- 二月, 巡幸比列忽, 親問髙年及貧窮者, 賜糓有差.[정덕본은 판독이 어렵다. 《삼국사절요》·주자본에는 差로 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에서는 差를 따랐다.]
- 〔3년(300)〕 2월에 왕이 비열홀(比列忽)[2]로 나아가 나이가 많고 가난한 사람들을 몸소 위로하고 〔사람에 따라〕 차등을 두어 곡식을 하사하였다.
▶ 태백에서 망제를 지내고, 낙랑과 대방이 복속하다 : 300년 03월(음)
- 三月, 至牛頭州, 望祭太白山. 樂浪·帶方两國歸服.
- 〔3년(300)〕 3월에 우두주(牛頭州)[3]에 이르러 태백산(太白山)에서 망제(望祭)[4]를 지냈다.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양국[5]이 항복하여 복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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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왜국과 … 교환하였다 : 이 해에 해당하는 『일본서기(日本書紀)』 응신기(應神紀) 31년에 이 내용은 없다. 다만 같은 해 8월에 신라의 사신이 왜에 머무르고 있었고, 왜에 조선과 관련한 장인을 보내어 목공기술을 가진 도래인 집단인 이나베[猪名部] 등의 시조가 되었다는 전승이 실려 있어, 당시 왜와 신라가 통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신라와 교류하던 왜는 큐슈 지역의 세력일 가능성도 있다.
- 비열홀(比列忽) : 북한의 강원도 안변군 안변면 일대로 비정되는 지역으로, 대체로 진흥왕대에 신라 영토에 들어왔다고 인정되고 있어서, 이 기사는 사실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 우두주(牛頭州) : 우수주(牛首州), 수약주(首若州)라고도 하며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지역이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나해이사금 27년(222) 10월조에 백제가 신라의 우두주를 공격해왔다는 기사를 볼 때, 일찍부터 신라의 영토에 들어와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본서 권35 잡지4 지리2 삭주조에 의하면 선덕왕 6년(637)에 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고 하므로, 우두주라는 이름은 637년 무렵부터 쓰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이때에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여겨지므로, 이 기사의 사실성에는 의문이 있다.
- 망제(望祭) :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쪽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해가 있을 때 왕후(王侯)가 영내의 명산과 대천 혹은 바다를 멀리에서 바라보며 재앙을 물리쳐 주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
-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양국 : 낙랑과 대방은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으로 각각 313년과 314년에 없어진 중국 군현이므로, 이 기사에서 신라에 항복하여 복속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라 보기 힘들다. 따라서 3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낙랑군과 대방군에 소속된 일부 지역이 이탈하여 신라에 항복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79~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