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12대 국왕] 성제 유오(成帝 劉驁, BC 33~7)
- 재위 : 기원전 33년 ~ 기원전 7년
- 출생일 : 기원전 51년
- 사망일 : 기원전 7년
[성제의 연호]
- 건시(建始, 기원전 32년 ~ 기원전 29년)
- 하평(河平, 기원전 28년 ~ 기원전 25년)
- 양삭(陽朔, 기원전 24년 ~ 기원전 21년)
- 홍가(鴻嘉, 기원전 20년 ~ 기원전 17년)
- 영시(永始, 기원전 16년 ~ 기원전 13년)
- 원연(元延, 기원전 12년 ~ 기원전 9년)
- 수화(綬和, 기원전 8년 ~ 기원전 7년)
한 통종 효성황제 유오(漢 統宗 孝成皇帝 劉驁)는 전한의 12대 황제로, 자는 태손(太孫)이다.
[태자를 교체하려던 원제]
원제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으니 황후 왕정군이 낳은 태자 유오, 후궁 부씨가 낳은 둘째 산양왕 유강, 후궁 풍씨가 낳은 셋째 유흥이었다. 태자 유오는 자라면서 주색을 즐긴데 비해 유강은 총명하고 부지런한데다 원제처럼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잘 다루었다. BC. 35년 병석에 누운 원제는 태자를 유강으로 교체하려 했으나 태자궁을 관리하는 사단이 목숨을 걸고 개입해 포기했다. 사단은 원제의 증조모인 사 량제의 친척으로 원제를 존경했다.
[성제의 외척]
성제의 생모 왕정군은 왕금의 딸인데, 왕금에게는 8남 4녀가 있었다. 장녀는 왕군협, 차녀는 왕정군, 셋째 딸은 왕군력, 넷째 딸은 왕군제였다. 8남은 왕봉, 왕만, 왕담, 왕숭, 왕상, 왕립, 왕근, 왕봉시였다. 이들은 왕정군에게는 모두 아우였는데 이 가운데 왕봉과 왕승은 왕정군과 어머니가 같았다. 성제가 즉위하자 외척인 왕씨 일족이 권력을 잡아서 횡포를 부리자 황제는 무력해져갔다. 즉위 초에 맏사위인 함평후(咸平侯) 왕봉(王鳳)을 대사마 겸 대장군으로 삼았고, 이어서 다른 사위들인 왕담(王譚), 왕상(王商), 왕립(王立), 왕근(王根), 왕봉시(王逢時)를 제후로 삼았다. 이들을 제후로 삼을때 날씨가 요동치고 황색 안개가 끼어 불길한 징조를 나타냈다 한다.
왕봉의 뒤를 이어 왕상과 왕근이 대권을 잡았는데, 이들 왕씨 일족으로 고위직을 차지한자가 25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관직도 왕씨가 독점하여 닥치는대로 뇌물을 받아 조정 기강을 개판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왕봉이라는 성제의 외삼촌이 정권을 잡고는 무엄하게도 임금의 거처인 궁정을 빌린 일이 있었다. 게다가 왕봉은 집을 붉은 색으로 칠하고 토산점대(土山漸臺)도 세웠다.
왕봉은 대사마, 대장군으로 11년간 재직하다 양삭 3년(BC.22)에 사망했다. 왕봉은 사촌인 어사대부 왕음으로 하여 자신의 뒤를 잇게 할것으로 유언을 남겼다. 왕봉이 자신의 아우들은 사치하고 방탕해 국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왕음은 대사마.대장군 자리에 7년 동안 있다가 영시 2년(BC.15)에 사망했다. 이후 대사마.대장군 직위는 왕봉의 아우인 왕상과 왕근이 연이어 계승했다. 점점 망한 나라길로 가고 있었다. 결국 야심가 왕망이 출현, 후손들을 등쳐먹고 찬탈을 하게 된다.
[불안한 왕위자리, 주색에 빠진 황제]
성제가 왕위에 오르고나서 왕위자리가 불안정 하였는데, 성제는 조례에도 나오지 않을 뿐더러, 주색에만 빠져있었다. 그리고 성제는 황태후 왕씨와 사이가 별로좋지 않았는데, 황태후의 오빠 대사마 왕봉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복상사로 세상을 떠난 황제]
소의 부씨가 봉지였던 정도로 간 후, 손자를 왕위에 올려놓기 위해 조비연과 조합덕을 양아공주의 집으로 보내 성제의 눈에 띄게 했던 것이다. 조비연과 조합덕은 미모가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가무로 성제를 홀렸고, 성제는 조씨 자매를 영항으로 불러들었다. 조씨 자매는 차례대로 성제를 모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성제가 조합덕의 침상에서 급사하였고, 성제의 죽음에 많은 의문이 있었는데 의심이 조씨 자매를 향하였다. 성제가 급사한지 얼마 되지않아 조합덕은 자살하였다고 한다.
[가족관계]
- 황후 : 폐후 허씨(廢后 許氏) - 허아
모두 요절 - 황후 : 효성황후 조씨(孝成皇后 趙氏) - 조비연. 핍박받아 자살
- 후궁 : 소의 조씨(昭儀 趙氏) - 조합덕. 효성황후 조씨의 여동생이다.
- 후궁 : 첩여 반씨(婕妤 班氏) - 반념
- 후궁 : 첩여 위씨(婕妤 衛氏) - 원래 반첩여의 시녀였으나, 반첩여의 추천으로 성제의 첩여가 됨
- 후궁 : 첩여 마씨(婕妤 馬氏) - 후한 명덕황후 마씨가 족친이다. 동생이 마첩여이다.
- 후궁 : 첩여 마씨(婕妤 馬氏) - 후한 명덕황후 마씨가 족친이다. 언니가 마첩여이다.
- 후궁 : 미인 왕씨(美人 王氏)
- 후궁 : 미인 허씨(美人 許氏) - 폐후 허씨가 고모이다.
요절 - 후궁 : 궁녀 조궁(曹宮 趙궁)
여러 자녀들이 있었지만, 대개 요절하거나 조비연 자매에게 살해되었다. - 후궁 : 궁녀 은환
태자 시절 총애하는 궁녀였다. 태자였던 성제의 아기를 가졌으나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