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AD 247~261) 15년 : 기원후 261년
▶ 달벌성을 쌓고 성주를 두다 : 261년 02월(음)
- 十五年, 春二月, 築逹伐城, 以奈麻克宗爲城主.
- 15년(261) 봄 2월에 달벌성(達伐城)[1]을 쌓고 나마(奈麻)[2] 극종(克宗)[3]을 성주(城主)[4]에 임명하였다.
▶ 백제의 화친 요청을 거부하다 : 261년 03월(음)
- 三月, 百濟遣使請和, 不許.
- 〔15년(261)〕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5]
▶ 첨해이사금이 죽다 : 261년 12월28일(음)
- 冬十二月, 二十八日, 王暴疾薨.
- 〔15년(261)〕 겨울 12월 28일에 왕이 갑자기 병이 나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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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달벌성(達伐城) : 달불성(達弗城)이라고도 하며 달구화(達句火), 달고벌(達古伐), 달구벌(達丘伐) 등으로도 불린다.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 위치한 사적 제62호 대구 달성(大邱 達成)이 이때 축조된 달벌성으로 추정된다. 대구 달성은 평지의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토성으로 둘레가 약 1,300m, 높이는 4m 정도이다. 성벽의 아랫부분에서 청동기시대 후기(초기철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서, 이 지역의 세력이 초기국가단계로 발전하면서 처음 토성을 쌓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때의 축성은 초축이 아니라 개축일 가능성도 있겠다. 한편 대구 달성의 성벽 윗부분에 큰 돌덩어리들이 일부 노출되어 있는데, 후대에 개축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대구 달성은 조선 영조 12년(1736) 대구 읍성을 새로 쌓을 때까지 읍성의 역할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 나마(奈麻) : 신라 경위(京位) 17관등(官等) 중 제11등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나마에 대한 주석 참조.
- 극종(克宗) : 이 기사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 성주(城主) : 당시의 공식적인 직함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는 확보한 주요 거점에 성을 쌓고 수비를 위해 군대를 주둔시켰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군대의 지휘관이며 그 거점을 총괄하는 직책이었을 것이다.
- 백제가 … 받아들이지 않았다 : 본서 권24 백제본기2 고이왕 28년(261) 3월조에 같은 내용이 있다.